부동산 관리업계에 일본을 소개

  • 2014/05/11 17:06
국제인
 

부동산 관리업계에 일본을 소개

 

(2012 년 브라질 리우데자네이루의 국제회의에서 일장기를 들고 있는 분이 시오미씨 )

부동산 관리업 의 국제화 . 겉 보기에는 별다른 관계가 없는 것으로 생각되지만 , 사 실 , 일본 은 지금 세계의 부동산 관리업자의 주목을 받고 있다. 한국에서도 일본의 업계 동향을 배우려고 시찰단이 빈번하게 방문하고 있다고 한다. 세계 각국의 부동산 업자 네트워크를 가진, 일본 최초의 전미 부동산 관리업협회(IREM)의 공인부동산 관리사. 주식회사 메이와 주택 판매 유통 센터의 시오미 노리아키 씨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시오미 노리아키씨 프로필

 

( 주 ) 메이와 주택판매 유통센터 대표

쇼와 62 년 ( 서기 1987 년 ), 아파트 개발 업자에서 투자형 아파트 임대관리부문 으로 본 회사를 설립 .

매매업계와 비교 해 , 입대 업계 의 발전이 뒤쳐져 있음을 통감하고 , 미국의 진화된 임대관리업 ( 프로퍼티 매 니지먼트 ) 를 접하 게 되어 , 그 시스템을 배웠다 . 「 프로퍼티 매니지먼트 」 란 자산을 『 투자 상품 』 으로 생각 하고 , 그 투자 효율을 최대한으로 높이기 위한 관리 방법 이다 . 본고장의 「 프로퍼티 매니지먼트 」 를 습득함과 동시에 , 미국 최대의 임대 관리업 단체 IREM(Institute of Real Estate Management: 전미 부동산 관리업 협회 ) 가 교육 ・ 인정하는 CPM(Certified Property Manager:공인 부동산 관리사)자격을 일본에서 처음으로 취득.

세계 각국의 부동산 업자와의 폭넓은 네트워크를 이용 해, 일본의 부동산 사정을 세계로 발신. 재단법인 일본 임대주택 관리협회 이사 등 많은 부동산 관련 단체에서도 요직을 역임.

주식회사 메이와 주택판매 유통 센터

도쿄도 세타가야구 와카바야시 3쵸매 4번지 11호 제7메이와 빌딩

TEL 03-5430-5100/ FAX 03-5430-5101

E-mail : info@meiwa-g.co.jp

 

원룸 맨션의 관리 ・ 매각의 길을 걸은지 27년. 2014년 현재 8400채의 물건을 도쿄, 카나가와, 사이타마에서 관리. 프로퍼티 매니지멘트의 일환으로, 보다 빠르고 정확하게 시장의 수요를 파악하고,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으로, 부동산 가치를 높이는 것과 동시에 놈은 이동률을 유지하고 있다. 

기업설립의 계기 는?

최근에도 , 한국에서 20 사 정도의 부동산업자의 방문을 받았으나 , 처음 회사를 설립하던 때에는 이런 일이 장례에 일어날 것 이라고는 상상도 하지 않았다 .

이 일을 시작하게 된 계기는 정말 단순한데 , 원래는 부동산 매매업을 하고 있었으나 , 연년생인 동생이 부동산 투자 사업으로 성공을 한 일이 있어서 , 그 물건의 관리를 하게 되었다 . 그렇게 그 사무에 관련되던 중에 , 매매업과 비교 했을 때 관리업은 그 때 까지도 뒤쳐져있다는 생각을 하게 되었다 .

동시에 그것은 , 비지니스 찬스라는 생각이 들었고 , 선배 경영자에게 가르침을 청하고 , 또 내 나름의 지식을 쌓아갔다 . 내가 직접 하나에서 열까지 모두 한 건 , 한 건씩 계약서를 작성하고 , 무엇이든 더듬거리며 시작했지만 , 많은 훌륭한 선배 경영자들을 알게 되고 , 26 살 , 혼자서 시작한 회사도 순조롭게 실적을 늘릴 수가 있었다 .

그리고 , 기획 임원으로 활동해 온 일본 임대관리 주택협회 ( 일관협 ) 에서도 지금은 이사직을 맡게 되었다 .

(2012 년 브라질 리오데자네이루 국제회의 에서 )

미국의 공인부동산 관리 자격을 취득하게 된 계기는?

1990 년대 후반에 , 미국으로부터 부동산 증권화 라는 아이디어가 일본에도 들어왔다 .신문에서도 화제가 되었고 , 나도 1996년 , 일관협의 동료들과 미국에 시찰을 갔다.그리고, 매우 발전해 있는 미국의 부동산 관리의 이론적 사고방식을 접하게 되고, 연구회를 설립하게 되었다. 나는 그 연구회의 담당이기도 했기 때문에, 미국의 공인 부동산 관리사 자격증을 취득하게 되었다. 이 자격증은 세계적으로 확산되어, 사실상 국제 표준이 되어있다. 

 

(2012 년 중남미 과태말라의 대회에서 )

 

(2012 년 중남미 과태말라의 대회에서 )

미국 사람들의 자신들의 활동을 표준화시켜 가는 방식은 우리도 배울 점이 많다.
그 자격증 덕분에 세계 각 국에 친구가 생겼다. 일본인은 아직 많지 않지만, 많은 맴버 들이 일본에 흥미를 가지고 있어서, 일본에 대해서 이야기할 기회도 많다.

나는 결코 유창하게 영어를 구사하는 것도 아니고, 특별히 해외 경험이 있는 것도 아니지만, 어딜 가더라도 두려워 하지 않는 성격이라, 외국인들과 섞여서 어울리고, 리셉션 같은 것도 즐기고 있다.

 

해외에서도 넓은 네트워크를 가지고 계십니다만 장래 꿈은?

T P P나 도쿄올림픽, 저출산 고령화 등의 사회적 정세를 보았을 때, 지금 이상으로 일본의 국제화는 필수적 이다. 또, 앞서가는 기술력, 안정적인 사회, 일본 문화의 유니크 함 등 … 일본에 흥미를 가지고 있는 친구들도 많다.

그러나, 부동산 관리업을 하고 있는 일본인 경영자로써 해외의 동업자 들과 관계를 가지고, 일본의 정보를 발신하고 있는 사람은 아직도 많지 않다.

업계를 더욱 더 발전 시키고자 모인 동지들 이기 때문에, 신뢰 할 수 있는 사람들을 모으기도 어렵지 않다. 가까운 미래의 일본에도 더욱 더 많은 외국인이 살 게 되고, 또 비지니스를 하는 사람도 늘어나게 될 것 이다.

부동산 관리업자도 그들과 함께, 해외의 신뢰할 수 있는 동업자 사이 의 네트워크가 반듯이 필요로 하게 되는 날이 틀림없이 올 것 이다.

그러나, 현재의 일본의 부동산 관리업의 이미지는, 결코 멋있 다고 말할 수는 없다.

나의 꿈은, 이 업계의 일을 『 멋있는 일 』 로 만들고 싶다. 부동산 매매의 일은, 겉 으로 보기에 화 려하게 보이지만, 사회적 경기의 영향을 받기 쉽다.

그 점에서, 관리업은 화려하지는 않지만, 관리 건물 수가 늘어나면 늘어날 수록 경영이 안정적으로 될 수 있는 우량한 비즈니스 이다. 지금은 국내에서의 활동이 대부분 이지만, 비지니스를 해외로 넓혀 나아가면, 앞으로 본격적인 경제 개발을 맞이할 동남 아시아나 남미 각국에서의 가능성은 현격한 차이를 가질 만큼 크다.

 
 
 

(2013 년 남미 칠리에서 친구들과 )


  (2013년 남미 칠리에서 부동산 관리 협회 회장님과)

제적으로 활약하고 있는 젊은이들에게 보내는 메세지

부동산 관리업은 , 시대와 함께 진화 해 가는 대단한 가능성이 있는 비지니스업이다 .
겉으로 보았을 때 별볼 일 없어 보이지만 , 입주자의 요구에 따라, 운용 형태도 변해 간다. 외국인에 대한 대응, 고령자를 대상으로 한 주택 서비스, 애완동물과 함께 살 수 있는 아파트 등 새로운 서비스를 제공하는 회사도 점점 늘어가고 있다.

우리들의 사명은 、『 집 주인을 대신하여, 부동산 물건을 효율적으로 운영하고, 더 많은 수입을 확보하는 것 』 이지만, 입주자의 생활기반을 지지하는 사회적인 측면에서도 커다란 일이다. 그렇기 위해서는, 물건에 관한 입주자의 입장을 이해하고, 선택 받을 수 있는 서비스를 제공하는 것도 중요하다.

향후에는 일본에서 시작되는 서비스도 점점 계발 될 가능성도 있다.

도쿄 올림픽을 통하여, 또 다시 일본은 주목을 받고 있다. 

 

후쿠시마에 남아 후쿠시마의 본모습을 전하고싶다.

  • 2012/05/07 23:22
국제인

 

 

후쿠시마에 남아 후쿠시마의 본모습을 전하고싶다.

 



후쿠시마에 남을 생각은 없었다.

1년전의 지진 이틀후, 동일본국제대학이 있는 이와키시를 나와 모국으로 피신했다. 5월말에 재입국 했을 당시엔 졸업만 하고 빨리 돌아가기 위해서였다고 한다. 같은 세미나 친구 2명은 돌아오지 않았다.
하지만, 마음은 점점 변하기 시작했다. 일본인 친구와 대학교 선생님, 여름축제를 통해 알게된 상점가 사람들, 장학금을 지원해주는 나코소 로타리 클럽 회원들은 자택에 초대해 딸처럼 귀여워해주었다. 방사능의 불안을 이유로 후쿠시마를 떠나면, 이 사람들을 배신하는게 아닌가. 대참사 이후, 미디어가 해야할 역할의 중요성을 알게 되었다. 후쿠시마방송 면접에서 [후쿠시마에 인연이 없는 일본인들보다, 인연이 있는 외국인이 세계에 전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고 호소했다. 그녀에게서 열의를 느꼈다고 채용담당자가 말했다. 신졸채용은 한명뿐이였다. 세미나 담당 교수에 의하면, 높은 요구에도 포기하지않는 끈기있는 성격이라고 한다. 영업부에 배정 예정이며, 외국인 채용도 여성이 영업담당을 하는 것은 처음이라고 한다. [회사 이익을 좌우하는 일이라 긴장됩니다.] 이와키가 배경인 영화 훌라걸즈를 보고 대학을 정했다. 입학 후, 어렸을때부터 고민했던 아토피도 나았다고 한다.

[저는 여기의 물과 공기가 잘 맞아요] 3월 19일 아사히 신문 발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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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기사를 읽고 그녀에게 직접 이야기를 듣고 싶었습니다.
후쿠시마방송의 연수를 끝낸 주미선씨는 질문에 답해 주었습니다.


최종적으로 후쿠시마에 남아 취직활동을 하려고 했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입니까?


一가장 큰 이유는, 많은 도움을 주신 요네야마 로타리 클럽의 경영자 분들과, 저를 가족처럼 대해주시고 응원해주신 후쿠시마분들을 놔두고 귀국할 수 없었기 때문입니다. 제가 한국에 일시귀국 했을 때에도 매일같이 연락을 해주시며 일본의 상황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리고 후쿠시마는 안전하다고 할 수는 없지만, 사람들이 평범하게 살 수 있을 정도로 안정되어 있어서 민감하게 반응하지 않아도 된다는 것을 다른 지역의 일본인들과 한국에 있는 분들에게도 전하고 싶습니다.
 
한국에 계시는 부모님은 일본에서 지내는 것을 반대하지 않습니까?
 
친척들은 반대했지만 부모님은 제가 일본에 돌아가고 싶다고 했을때 전혀 반대하지 않으셨습니다. 제가 일본에 돌아오고 싶다고 희망했기 때문에 딸의 의향을 존중해주셨습니다. 한국에서는 부모님의 의사를 따르지 않으면 안되는 사회풍조가 아직 남아있기 때문에 제 친구들도 부모님의 반대로 일본에 돌아올 수 없었습니다. 제가 조금이라도 방사능이나 지진을 걱정하였더라면 가지 말라고 말리셨을거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저는 일본에 있는 분들과 연락을 주고 받으면서 전과 다름없이 생활하고 있다는 것을 부모님과 얘기를 나누며 조금이라도 안심할 수 있도록 노력했습니다.
부모님을 안심시키기 위해서 자주 연락을 하고 한국의 친구들이나 아는 분들에게 후쿠시마는 평소와 다르지 않게 지내는 것을 전해서 풍평피해를 조금이라도 없앤다면 기쁘네요. 저는 영업부에서 일하고 있는데요, 전과 다름없이 주윗 사람들과 접하면서 사회인으로서 채용해주신 후쿠시마방송에서 도움이 되는 사람이 되고싶다고 생각합니다. 더 나아가서는 후쿠시마의 부흥에 도움이 될 것이라고 믿고 있습니다.

많은 유학생들이 돌아오지 않는 가운데, 부모님의 영향력이 강한 한국인 유학생 주미선씨는 후쿠시마에 남아 돌봐주신 분들을 위해서라도 여기서 힘내자고 맹세했다.  취직활동도 힘내서 희망한 후쿠시마방송의 최종면접에 남아 생각을  전했다.『후쿠시마에는 많은 친구들이 있어서 모두 평소와 다를 것 없이 생활하고 있습니다. 일본인이 아닌 외국인인 제가 후쿠시마에 남아서 부흥을 위해 힘쓰는 모습을 보인다면 세계의 모든 사람들을 조금이라도 안심시킬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후쿠시마방송에서는 지금까지 외국인 또는 유학생을 한번도 채용한 적이 없다고 한다. 그러나 그녀의 순수한 마음이 채용담당자의 가슴에 와닿았다고 생각한다. 앞으로 몇년간은 영업부에 배속받아 광고대리점이나 기업등을 담당할 예정이다. 그녀의 활약이 조금이라도 후쿠시마에서 사는 사람들에게 위로가 된다면 한국의 부모님도 기뻐하실거라고 생각한다. 미선씨의 부모님에게 전하고 싶다. 정말 멋진 따님이라고.




 

 

일본 와 1년에 꿈을 이룬 신데렐라 HIMEKA가 마침내 데뷔

  • 2009/06/03 15:14
국제인
압도적인 가창력으로 3186명의 응모자의 절정에 선 것은 바로, 애니메이션으로부터 나온 것 같은 순진한 마음을 가진 캐나다여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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본명: Catherine St-Onge(카트리누 센트 온쥬)
캐나다의 퀘벡주 출신. 모국어는 프랑스어.

워킹홀리데이 제도를 이용해 일본에 온 그녀는 인터넷에서 우연히 본 「 제2회 전일본 애니송 그란프리」에 응모. 응모 총수 3186명중에서 승승장구로 결승전 진출. 결승전에서는 심사원들도 놀란 압도적인 가창력과 일본어 표현력으로 멋지게 우승.

2009년 5월 27일, 프로듀서로 스키마스잇치의 츠네타 신타로씨가 책임지고 2009년 4월부터 방송하는 「전장의 바르큐리아」의 오프닝주제가 「내일에의 키즈나」로, 소니뮤직 재팬인터내셔널에서 꿈에도 그리던 일본데뷔를 달성했다.

http://www.himeka.info/
일본에 온 계기는 무엇입니까?

미국의 {애니메이션 컨벤션에서 하고 있던}가라오케 콘테스트에서 우승하고 나서 옛날부터 꿈꿔오던 가수가 되기 위해 돈을 모아 준비를 하고 일본에 왔습니다.
일본에 갖 와서는 일본어가 유창하지 못했기 때문에 아르바이트를 찾는데도 고생했습니다만, 프렌치 레스토랑등에서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꾸준히 일본어를 공부하기도 하고 가라오케 박스나 집에서 노래연습을 하면서 기회를 기다렸습니다.

일본어가 매우 능숙합니다만, 어떻게 공부했습니까?

열다섯살 때 「세라문」을 봤을 때부터 일본의 애니메이션에 흥미를 갖고 오리지날 일본어판 애니메이션을 보거나 애니메이션 노래를 들으면서 일본어를 배웠습니다. 학교에서 공부할 기회도 없었고 일본인 친구도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것이 독학으로 힘들었지만, 일본어노래를 정말로 좋아했기 때문에 고생스럽진 않았죠. 일본에 오고 나서도 조금이라도 시간이 있을 때에는 텔레비전을 보거나 하면서 일본어 단어를 기억하고 있습니다. 오늘도 새로운 단어를 많이 기억했어요. 종이그림 연극, 혈압, 광견병등등 (웃음)

오디션에 합격할 자신은 있었습니까?

외국인이므로 현실적으로는 어렵다고 생각했습니다만, 언젠가는 기회가 올거라 믿고 노력하고 있었습니다.

HIMEKA라는 이름은 스스로 생각해냈다고 들었습니다만.
HIMEKA는 제가 어릴 적부터 공상하던 애니메이션의 캐릭터로 여러가지 스토리를 그려가고 있었습니다. 글로 쓴 적은 없었지만 나의 마음속에 살고 있는 저의 이상형입니다.

「내일에의 키즈나」은 어떤 생각을 담아 부르고 있습니까?


「자신을 믿고 밀고나갔으면 좋겠다」고 노래를 듣는 사람들을 응원하는 마음으로 노래하고 있습니다. 힘든 일이 있어도 노력하는 사람들에게 용기와 희망을 주는 노래를 부를 수 있어 매우 행복합니다.

HIMEKA씨와 같은 꿈을 가지고 일본에 온 외국인들에게 메세지를 부탁합니다.
여러 가지 힘든 일도 있다고 생각하지만 일본에 갖 왔을 때를 떠올리면서 힘내세요. 저도 일본어를 더 공부하고 모두에게 기운을 북돋아주는 노래를 불러드리겠습니다.

그녀의 노래에 대한 정열은, 오직 「모두에게 용기를 주기 위해서 노래하고 싶다」는 마음으로 우러러나온 것처럼 느껴졌다. 심사원들에게도 노래테크닉 만이 아닌 그런 마음이 전해졌던 것이라고 생각한다.

학생이나 젊은이가 통역 자원봉사 가이드를 하는 메리트

  • 2009/04/01 16:19
국제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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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외국어를 하는 것에 자신이 생긴다 ⇒어학은 도량이다.
2: 외국인의 시점에서 일본의 문화에 접할 수 있다.  
⇒일본의 좋은 점을 재발견할 수 있다.

3: 안내해주고 있는 사람과 상대방 나라의 문화와도 비교하면서,
깊이 있는 커뮤니케이션을 할 수 있다.  
⇒ 이문화에 너그러운 마음을 가질수 있다.

4: 자신의 행동이 고맙게 여기게 된다. 감사받는 기쁨을 느낄 수 있다.
⇒ 인간의 진짜 기쁨을 느낀다.

5: 언어적 커뮤니케이션이 충분하지 않은 분은 상대가 무엇을
요구하고 있는지를 이해하려고 노력한다.
⇒상대를 배려하는 마음과 고도의 커뮤니케이션 능력이 몸에 붙는다.




 ↓↓↓

통역 자원봉사 가이드는「산 어학력」·「배려하는 마음」·「커뮤니케이션 능력」과 사회인으로서 필요한 기초능력이 종합적으로 길러지는 매우 가치가 있는 체험이다.


 ↓↓↓

도쿄에서도 학생통역 자원봉사 가이드 연락회가 발족할 예정


通訳ボランティアガイドに興味のある方は①お名前②年齢③住んでいる都道府県④学生の場合は学校名⑥英語あるいはその他使える外国語のレベル等を記入の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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までご連絡ください。詳しい資料と説明会のご案内をさせていただきます。
 (日本人学生・留学生・学生OBOGの方々大歓迎です!!)
40년 이상의 역사를 자랑하는 쿄토의 학생통역 자원봉사 가이드 단체

FGC 프리가이드 클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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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떤 분위기 써클입니까? 또 어떻게 활동하고 있습니까?

 
가이드 자체는 개인으로 활동하는 일이 많습니다만 평상시의 연습이나 학습회때에는 모두 화기애애합니다. 그러나 1 학년생은 가이드의 자료등 모두 선배에게서 텍스트를 빌려 그것을 베껴쓰는 것부터 시작되기 때문에 활동 자체는 상당히 힘듭니다.

그리고 써클내의 테스트에 합격하면 드디어 가이드를 시작합니다. 처음은 선배의 서포트역으로서 스타트합니다만 1, 2회 그 역할을 해내면 드디어 자신이 메인인 가이드로 활동합니다. 리허설을 한 절이나 신사에 가서 가이드 해도 괜찮은가 허가를 받고 나서 관광객을 안내합니다.

단 2,3시간내로 사이좋게 되는 것이 이 통역 자원봉사 가이드의 활동의 참맛이 아닐가요. 쿄토나 일본의 문화에도 자세해지고 영어에 자신이 붙게 되는, 어학을 전공하고 있는 우리에게 있어서 이렇게 충실한 서클 활동은 없습니다.

년전부터 시작된 가이드 콘테스트란?



가이드 콘테스트는 외국인에게 한개의 일본문화에 대해 영어로 15분간 설명하는 콘테스트입니다. 프레젠테이션이나 스피치와 달리 가이드이므로 가르치는 것 만으로는 안됩니다. 상대를 즐겁게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매년 12월에 열리기에 영어나 역사에 자신이 있는 분 한 번 도전해 봅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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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GC FREE GUIDE CLUB
http://www.kufs.ac.jp/student/freeguide

국제결혼의 커플을 3년간 취재해 보고

  • 2009/03/21 17:38
국제인
세계에 가족이라고 하는 단위가 무한하게 퍼져 나갈 가능성이 있는 커플.
이 3년간, 유학생과 함께 정말로 다양한 국제 결혼의 커플을 만나고 이야기를 나눴습니다. 일본인 여성과 구미인의 남성, 일본인 남성과 아시아인의 여성이 통계적으로는 많은 듯 했습니다만, 연령이나 일본에 온 경위, 남녀 부부의 생각도 다양해 이 커플이 바로 국제결혼 커플이라고 단정짓는 것은 어렵다고 실감했습니다.
그러나 굳이 말하면 국제결혼 커플이라고 하는 것은, 전 세계에 가족이라고 하는 단위가 무한하게 퍼져 나갈 가능성이 있는 커플은 아닌가고 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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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를 들어 부친이 오스트레일리아사람으로 모친이 일본인의 커플의 경우, 태어나는 아이들은 2개의 문화를 공유하죠. 그리고 아버지의 형제의 사촌, 엄마의 형제의 사촌에게도 다양한 일본 이외의 문화도 자연스럽게 전해진다고 생각합니다. 거기서 또 그 사촌들이 자신과 다른 국적의 사람에게 흥미가 돋아 결혼한다고 생각하면 영향은 꽤 있죠.


실제, 국제 결혼의 인터뷰를 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형제나 친척중에도 국제결혼을 한 사람이 있다는 이야기를 많이 들었습니다. 하물며, 그 국제 결혼의 커플로부터 태어난 아이들이 자신 이외의 문화를 가지는 사람, 위의 예로 말하면 일본인도 오스트레일리아사람도 아닌 사람과 결혼할 가능성도 높을 것이고, 또 부모도 실제 자신들의 일도 있어 설마 반대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이와 같이 국제 결혼에 대해서 너그러운 사람이 계속 많아지면 좀더 상호의 문화에 대해 이해를 하게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일본도 원래는 아이누의 사람들이 살고 있어 거기에 다양한 사람들이 이주해 일본인이 되었으니까 별로 특별한 일은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국제결혼의 커플들로부터 태어난 아이들도 일본 사회에 잘 적응하며 일본인의 아이들이 그 아이들과 함께 놀면서 거기에서 무엇인가 느낀다면 꼭 일본도 외국인들이 살기 쉬운 환경이 된다고 생각했습니다.


다음 번 6월호는 또 예전대로 사이좋은 국제결혼 커플을 소개해 드리겠습니다.
국제 결혼 인터뷰

국제결혼 베스트 커플

국채결혼커플 인터뷰

국제 결혼을

말레시아인 남편과 일본인 아내 커플

국제 커플 인터뷰

국제 결혼 인터뷰

국제 커플

다문화적인 출산

여러분의 인터뷰 특집입니다

사랑의 형태。

국제결혼 인터뷰

치과의원을 운영하는 호시노씨 부부

국제 결혼 인터뷰

  • 2008/12/01 15:57
국제인
미국인 남성과 일본인 여성의 커플
세이리 부부

국제 커플 인터뷰
일본인 남성과 러시아인 여성 커플 와카바야시 부부
최근, 국제 결혼은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후생 노동청의 인구 동태 통계에 의하면 2003년 국제 결혼은 36,030건으로 혼인수 전체의 약4.8%에 달합니다. 즉, 20쌍 중 1쌍은 국제 결혼입니다. 벌써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당신도 국제 결혼으 할 지도 ! ?
국제 결혼의 이상과 현실이란 ! ?

"일본에 온지 14년, 지금은 아이들 3명과
마이홈에서 행복하게 사는 세이리 부부"


어디서 만났습니까?

"제가 20살 때 처음으로일본에 왔는데,
미국에 돌아가는 전날에 우연히 식사를 하고 있었던 가게에서 가오리를 만났습니다.
제가 한 눈에 반했습니다.
아주 친절하고 미인인 사람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 후, 미국에 돌아가고 나서 6개월 정도 펜팔을 하거나 국제전화로 이야기하거나 했습니다.
그 때는 전화 요금이 정말로 비싸게 들었습니다.
"
"편팔을 하고 있을 때 동안에 서로 기분이 좋이해서,
그 연말, 가오리가 미국에 놀러 왔을 때에,
로스앤젤러스에 함께 여행했습니다.
정말로 즐거웠습니다.."
"그 다음에 제가 일본에
밤에 아르바이트를 하면서
1년 동안 체재하기러 했습니다.
"
"일본어 학원에 다녔습니다.
언제라도 가오리를 만날 수 있으니까
매일 힘들었지만 행복했습니다.
(남편' 윌리암씨)"


부모님은 어떻게 생각 하셨습니까?

"제 어머니는 브라질인이라서
어머니와 아버지도 국제 결혼입니다.
미국에서는 국제 결혼은 아주 많아서 모두 따뜻하게 축복해 주었습니다.(남편).

제가족은 남동생이 필리핀인 여성과 결혼했는데, 익숙해져는데도 불구하고, 처음에는 어색한 느낌이 있었지만 남편이 일본어를 할 수 있어서 안심했습니다.(아내)
"

"아들에게는 어떤 교육을 하고 있습니까?
집에서는 영어로 이야기 합니까?"


"남편은 일본어를 할 수 있어서 아들들은 별로 영어로 이야기 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장냐는 대부분위 영어를 이해 할수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영어로 이애기 하지 않습니다.

.나도 아직 아들이 어렸을 때는 영어로
이야기를 했지만, 친구나 가족과 이야기를
할 때는 일본어를 사요하니까 대부분 일본어를 사요하는 생활입니다.(아내)
아들이 원하면 미국에 유학을 보내고 습니다. 우리 나라문화도 보여주고 싶습니다.
(님편)
.
"

"국제 결혼을 생각 하는 분들에 메새지를
부탁합니다."


"일본에 사려고 하면 일본어와 일본 문화를
이해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힙니다."
"살고 있는 나라에 용화하는 노력은
필요합니다.
우리 남편은 일본을 아주 좋아하니까
"
"그 것은 편하게 익숙 해습니다.(이내)
서로 언어가 달라서 게다가 사고 방식이 다릅니다.
우리 나라 미국에서는 아침에 목욕을 하는데 일본인은 밤에 목욕을 합니다.
그러나 어느쪽으로 맞다, 안 된다 라는 것이 아니라 서로를 존중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국제결혼 베스트 커플

  • 2008/10/01 15:54
국제인
동북 아시아 사람들의 상호이해를 라이프워크(Lifework)로서 부부가 함께 만들어 가는
카사이 부부
"(남편) 카사이 노부유키씨 프로필··경제학 박사, 아시아 경제 문화 연구소 이사,
한국, 동북 아시아 경제 전문가,
서울 대학 경제 연구소 객원 교수, 히데아키 대학교수 등을 역임 "



"(아내) 카사이 하쿠스이씨(전정선) 프로필: 중국에서의 공무원, 외자계 기업의 고문을 거쳐 카사이씨와 결혼:
그 후, 일본에서 한국어나 중국어 강사를 맡음.
현재, OKTA 치바 이사이며 조선족친목 단체 천지 협회의 중심적 멤버 "

국제결혼 베스트 커플

"Q1: 이전에 동북 아시아의 개발
및 투자 세미나에 참가한 것 같은데? "


"A1: (남편)세미나의 주제는, 1992년에 유엔 개발 계획(UNDP)으로
제창된 두만강 유역의 개발로 거슬러 올라갑니다.

중국, 러시아, 북한의 국경에 걸치는 이 지역은 다국간의 협력 아래, 북한의 경제적 발전도 재촉하면서, 동북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목표로 하려고 한 것입니다.
나도 거의 동시기부터 이 개발 계획에 있는 의미와 관련되어 1995년에는 북한 정부의 요청으로 자유무역항의 개발에 대해 조언을 했습니다. 유엔을 끌어들여 동북 아시아의 평화와 번영을 위해 이 계획을 추진하려고 하는데
일본 정부의 이 지역에 대한 관심은 소극적이라고 밖에 말하지 않을 수 없네요. 일본에 있어서도 일본과 동북 아시아를 최단 거리로 묶는, 이 지역이 국제적으로 크게 발전하여 동북 아시아의 평화에 공헌하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Q2: 나고야에서 행해진 지구박(?)에서 일본에 있는 조선족 사람들이 한중일의
트라이링궐(3개국어를 말하는 사람)이라고 하는 것으로 주목을 받았다고 하는데?"



"A2: (아내)우리들은 어렸을 때부터 가정이나 학교에서는 한국어,
밖에서는 중국어와 구분하여 사용하며, 회의나 집회등에서도 2개국어를 병행하여 사용했습니다.
지구박에서는 중국어나 한국어를 말하는 사람들이 해외로부터 많이 왔기때문에, 일본어·한국어·중국어를 사용할 수 있는 우리들이 평가 받은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Q3: 부인께서는 남편의 도움도 받으면서,
치바 OKTA 사무국장도 하고 계시는데?"



A3: (아내)OKTA라고 하는 조직은 해외에 거주하는 700만 한국인을 위한 네트워크 조직입니다.
"세상 도처에 60개 이상의 지부가 있으며, 일본에도 재일 한국인을 중심으로 활동이 번성합니다.

지금 일본에는 5만명 이상의 조선족이 살고 있다고 하는데, 재일 한국인 전체로 보면 극히 소수이고, 일본에서의 역사도 얕기 때문에 조선족을 중심으로 설립된 치바 OKTA가 인정받을 때까지 긴 시간을 소비했습니다만,
그러나, 남편이 OKTA 본부나 일본 OKTA의 각 지부 사람들에게 끈기있게 치바 OKTA의 중요성을 전해 준 덕분으로, 지금은 본부 사람들이나 다른 지부로부터 인정받게 되었습니다.

해외에서 활약하는 한국인도 재일 한국인 사람들도 우리 민족을 위해서 최선을 다해 주는 일본인의 감정을 이해해 준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일본인의 훌륭한 점은 끈기 강하게, 자신의 생각을 이루기 위해서 착실하게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가정 먼저 일본인으로부터 배우지 않으면 안 되는 것이겠죠. "



Q4: 지금, 제일 관심이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A4: (부)연변(조선 자치주의 대도시)이나 북한에 관한 보도가 너무 치우쳐 있는 것이
마음이 생기는군요.

연변이 마치, 탈북자나 범죄자의 둥지와 같이 보도 되거나 하고 있습니다만,
연변은 매우 교육 수준의 높은 도시이고, 한국, 러시아로부터도 많은 관광객이 방문하는 매력이 있는 도시입니다.
또, 북한에 대해서도 납치 문제나 빈곤등이 어두운 문제 밖에 채택하지 않습니다. "
"북한의 일반 사람들과 접촉한 사람들이
얼마나 있는 것입니까? "
"내가 아는 한, 지금의 일본인이나 한국인, 중국인이 잃어버린 순박함을 그들은 가지고 있습니다.

마치 먼 옛날의 일본인을 보고 있는 것 같습니다. 거기에 사는 사람들도 조금은 생각해서 타인에게 사정을 전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



"Q5: 두 사람 모두 매우 사이가 좋은데,
국제 결혼한 커플이 사이좋게 지내는 비결을
가르쳐 주세요."


"A5: (아내)사과하는 것을 좋게 여기지 않는 문화에서 자란 우리들은 솔직히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는 것이 서투릅니다.

그러나, 남편은 그것을 잘 알고 있기 때문에 뭐든지 깨닫도록 이야기를 합니다. 그가 우리들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있으므로 나도 그의 생각에 맞추지 않으면 안 된다고 생각합니다.

국제 결혼에서 중요한 것은 생각이 달라도 서로의 문화를 존중하고,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

오늘 정말로 감사했습니다.

국채결혼커플 인터뷰

  • 2008/08/04 16:42
국제인
국제 커플 인터뷰
일본인 남성과 러시아인 여성 커플 와카바야시 부부
최근, 국제 결혼은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후생 노동청의 인구 동태 통계에 의하면 2003년 국제 결혼은 36,030건으로 혼인수 전체의 약4.8%에 달합니다. 즉, 20쌍 중 1쌍은 국제 결혼입니다. 벌써 다른 사람의 일이 아닙니다. 어쩌면 당신도 국제 결혼으 할 지도 ! ?
국제 결혼의 이상과 현실이란 ! ?
국채결혼커플 인터뷰
오스트레일리아인커플 일본인여성커플 말리오트씨 부부


남편 STEVEN MARRIOT
부인 AKIE MARRIOT

1:둘이 어디서 만났어요?

2004년 4월 우연히 이케부쿠로역에 서로 알고 있는 친구한테서 소개를 받아서 만난 게 처음이었어요. 우리 그때부터 왠지 운명의 상태라고 느꼈어요. 그 날은 밤을 새 술을 마셨어요.

2:둘이 처음 만났을때 서로의 인상은 어땠어요?

아키에씨는 지직이고 예쁘고 나를 존경을 주는 태도로 해준 대단한 사람이였어요.

3:결혼하고 싶다고한 계기는 뭐였어요?

앞으로 계속 같이 있고 싶다고 생각해서요. 그냥 그 이유였어요.

4:부모님의 반응은 어땠어요?

오스트레일리아에 계시는 가족들이 다 매우 축복해 줬어요.특히 어머니께선.(STEVEN)
우리 기족들도 정말 축복해 특히 환희의 나머지 눈물을 흘려 버렸어요.( AKIE)

5:국채결혼을 해 좋은 점이 뭐였어요?

둘이 완전히 다른 문화적으로 과거를 갖고 있으면서도 둘이 서로 친밀한 관계를 갖고 있다란 것이죠.

6:AKIE씨는STEVEN씨한테 뭔가 말하고 싶은 것이 있어요?

앞으로 계속 서로 사랑하고 도와 주고 살아요.어딴 문제가 생겨도 같이 해결해요.

7:STEVEN씨, AKIE씨에게 메시지를 바랍니다.

날 기다려 줘서 고마워요.나이가 많을 수록 사랑하기 위해서 앞으로도 잘 부탁해요.

국제 결혼을

  • 2008/05/29 15:47
국제인
국제 결혼을200806

Q: 어디에서 만났습니까? 처음 만나서 이야기 했을 때의 인상은?
2001년 말에 펜팔 사이트에서 알게 됐습니다. 처음 아내를 만났을 때는 너무 놀랐습니다! 그녀가 한국의 여배우와 너무 닮았기 때문입니다. 무슨 수를 써서라도 사귀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를 만났을 때 인상은 정말로 성실한 사람이라는 느낌이 들었습니다. 사귀고 있을 때도, 저를 정말로 아껴주었습니다.

Q: 결혼을 하려고 생각한 동기는?
아내가 철야로 일을 하고 피곤한데도 저에게 맞추어 주곤 하는
그녀를 보고 있었을 때 결혼하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저 뿐만이 아니라, 저의 가족에게도 정말로 자상하게 대하는 그를 보고 결혼을 결심했습니다.

Q: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저는 중학생 때부터 일본을 너무 좋아해서 일본 가요등을 들었기 때문에 부모님도 저의 기분을 이해해 주셨습니다. (남편) 저의 부모님도 그의 일본어가 굉장히 유창해서 안심하셨습니다.

Q: 국제 결혼을 해서 좋았다고 생각한 점은?

서로 이해하려는 자세가 자연스럽게 몸에 베는 것이라고 할까요?
자기 자신이 인간으로서의 허용 범위가 넓어졌다고 생각합니다.
여러가지 생각을 듣는 경우가 많으므로 그 기분을 이해하려고
노력하는 자세가 강해졌다는 것입나다.

국제 결혼을 생각 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어드바이스 같은 것 있습니까?

이 사람이라고 결정했을 땐 국적은 관계없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결혼 하고 싶다고 생각한 사람이 우연히 일본인이었던 것 뿐이지, 인간으로서 마음속 깊은 곳에서 부터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국적은 관계없습니다.

Q: 부인에게 한마디 부탁합니다.
제 멋대로인 나를 기다려 줘서 정말로 고마워. "담배 끊을께.″

Q: 남편에게 한마디 부탁합니다.
자기 나라가 아니라서 많이 힘들거라고 생각하니까 여러가지 상담해 주었으면 좋겠어.

대단히 사이가 좋은 부부이었습니다. 언제까지나 행복하시길.

말레시아인 남편과 일본인 아내 커플

  • 2008/03/26 14:21
국제인
최근, 국제 결혼이 점점 증가하고 있습니다. 후생노동성의 인구동태 통계에 의하면, 2003년 국제 결혼은 36,030건으로 혼인수 전체의 약 4.8%에 달합니다. 즉, 20쌍 중 1쌍이 국제 결혼입니다. 이제 더 이상 남의 일만은 아닙니다. 어쩌면 당신도 국제 결혼을 할 지도 ! ?

국제결혼의 이상과 현실은 ! ?
말레시아인 남편과 일본인 아내 커플
양씨 부부

남편 양 치위부인 마츠마타 나루미

Q: 어디에서 만났습니까? 처음 만나서 이야기 했을 때의 인상은?

2001년 여름, 제가 일하고 있던 레스토랑에 그가 아르바이트로 들어 왔습니다. 그때는 아직 그가 일본말을 잘 하지 못해서, 대화도 어쩐지 잘 통하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직장 동료들과 가라오케에 가거나 하면서 점점 사이가 좋아지게 되었습니다.
나루미의 덕분으로 일본어도 갈수록 잘 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일본인도 잘 모르는 것을 알고 있어요.

Q: 결혼하게 된 계기는?

30살이 되었을 때 결심하고 과감히 프로포즈 했습니다.
나짱, 결혼합시다.
결혼해 주십시요, 라고 해야죠.

Q: 부모님의 반응은 어땠습니까?

말레시아에 살고 계시는 저의 부모님도 정말 기뻐하셨습니다. 사실은 머지 않아 일본을 방문하십니다.

Q: 국제 결혼을 해서 좋았다고 생각하는 점은?

중국인들은 동지 의식이 강합니다.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고 있어요.
그이도 정말 자상해요. 약속은 꼭 지키고, 저를 정말 아껴줍니다.
친구들이 많은 건 아니지만, 나짱은 성실하고 무엇이든 적극적입니다.

Q: 남편분에게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음식 솜씨가 좋으니까 앞으로도 맛있는 요리 만들어 주세요.

Q: 부인에게도 한마디 부탁드립니다.

긴 시간 함께 있으면서 여러가지 일이 있었지만, 나짱이 경제적으로도 뒷받침 해 준적도 있고 해서, 정말로 감사하고 있습니다.
앞으로도 잘 부탁해.

정말로 사이가 좋은 부부이었습니다. 늘 행복하시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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