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최초! 선거에 뽑혀 지역 위원으로서 활약한 대학생

  • 2011/01/27 11:38
특집

 

일본 최초! 선거에 뽑혀 지역 위원으로서 활약한 대학생

새로운 지방자치제의 형태를 찾기 위해 탄생한

자원봉사활동 참가자가 중심인 지역위원회란?

 

  
  

선거에 당선되어, 1500만엔의 예산을 사용을 두고 회의를 거듭하는 나고야시 (千種区田代学)지역위원으로서 활약한 2명의 대학생, 타마키 싱고씨(나고야대학 4년), 오오하라 코지로씨(아이치 현립대학 3년)에게 나고야 대학에서 져널리즘을 배우는 란스트롱(호주)가 인터뷰를 진행했다.


지역위원회란: 나고야시에서 시범적으로 시작된 인구 약 5000-15000명의 학구 마다 선거에서 당선된 지역위원을 중심으로 한 지역자치제도. 각 위원은 자원봉사이지만 약 500만-1500만엔의 예산을 가지고 주민대표로서 심의를 진행해나가는 것이 지금까지 존재하는 지역자치회나 지역연락회등과 크게 다른 점이다. 지방의회 형해화가 계속되는 중에 지역위원회의 회합은 모든 것이 공개되어 있어 일반시민도 자유롭게 참가하고 질문도 할 수 있는 새로운 형태의 자치제도의 형식이다.


  (좌: 타마키, 우: 오오하라 씨)

Q: 왜 자원봉사 위원에 입후보했는가?

A(타마키) 와카야마에서 나고야로 오면서 학생생활 중에 별로 지역과 관련없이 보내고 있었기 때문에, 지역사회를 알 수 있는 좋은 기회라 생각했다. 그리고 1500만이라는 예산의 사용처도 우리들이 정해 가는 것에 보람이 있을거라 생각해 입후보했다.

(오오하라) 스페인어를 공부하고 있어서, 가우디가 만든 건축물이 도시에 끼친 영향에 관심이 있다. 그래서 "역사적 건축물의 보존"이라는 과제가 지역위원회에 있는 것에 끌려 입후보했다.

Q: 지역위원회를 경험하고 느낀 점이있다면?

 

(타마키) 부위원장으로 역임을 했는데 주변에 인생경험이 풍부한 선배, 주부님등 분들이 젊은 위원들이 적어서인지 우리들의 의견을 잘 들어 주셨다. 학생이 새로운 아이디어를 내거나 직접 발로 뛰는 일이 지역사회에 도움이 된다는 것을 알았다. 정치에 관심을 보이지 않고 투표에도 가지 않는 젊은이들이 많지만 지역사회에 관심을 가지면 분명히 앞으로의 사회적인 책임을 가지게 될 것이라 생각한다.

저희 집안에 경찰관이나 공무원이 많고 또 학생회장을 한 적도 있고 해서 정치, 사회문제에 관해 비교적 친근하다고 생각했는데, 실제 1500만엔 세금의 사용처에 나름의 책임을 가지고 사고할 수 있었던 점이 책임의 무게를 실감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되었다. 지역적 내용이라면, 생활에 밀접한 문제가 많아 이벤트 위원이나 기획등에서 젊은이들이 활약할 수 있는 곳이 있음을 알았다. 제가 부위원장으로 뽑힌 것도 다른 위원분들이 젊은이들에게 거는 기대가 컸기때문일 것이다. 정치란 본래 특별한 사람만이 하는 것이 아니라 젊은이, 회사원, 주부, 생활의 도움이 필요한 분들의 대표등도 좀 더 활약할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번 위원을 맡으면서 저희 세대에게 거는 기대가 큼을 절실히 느꼈다. 그리고 이 지역위원회를 좀 더 기능시키기 위해서는 시의원들의 협력도 필요하다. 지역주민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여야 하고, 자원봉사 지역위원회를 받아들이는 연대가 생긴다면 지방자치도 조금 더 민주적이고 젊은 정치가들도 늘어날 것이다. 그 기대에 부응하기 위해 앞으로도 정치에 대해, 지방자치제에 대해 더욱 공부하고 싶다.

 



(오오하라)먼저 가벼운 마음으로 입후보를 해 당선되었을 때는 솔직히 놀랐다. 위원회의 회의에도 위원분들과 이야기를 나누는 중에 대학에서는 배울 수 없는 사회의 측면을 알 게 되었다. 대화에 익숙해져 있는 위원장님이 모두의 의견을 들으면서 조절해 나가는 방법을 보고 역시나 하고 생각했다. 자신이 살고 있는 지역에 대해 고액의 예산을 가지고 의논함으로써, 지역의 매력을 재인식할 수 있었다. 대학 친구에게도 지역위원 활동을 소개했더니 관심을 보이는 친구들이 많았다. 내 주위의 외국어나 국제관련의 공부를 전공하는 학생들은 보통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큰 문제에 눈이 가는데, 밀접한 지역에도 관심을 가지고 문제해결을 구체적이고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세계의 문제해결에도 이어지지 않을까고 생각한다.




그리고, 대학에서 가우디의 건축이 어떻게 거리 형성에 영향을 끼쳤는 지 배웠는데, 내가 살고 있는 곳의 역사적 건축물을 알고 자랑스럽게 여김으로써 지역에 대한 애착도 생겨난다고 믿는다. 지역위원회 이벤트에 대학친구들이 자원봉사 참가로 와줘서 정말 기뻤다. 한 명이라도 더 많은 학생이 지역주민과 지역사회에 관심을 가져주면 좋겠다. 장래에는 유학을 하고 싶은데, 위원회 활동을 통해 지역 연대의 소중함, 일본의 대단함을 재발견할 수 있어서 일본인으로써 나 자신을 이야기 하는거 같은 기분이 든다.

민주주의가 진전된 국가의 지방위원의 대부분은,  원래의 직업을 가지고 있고 위원활동은 자원봉사와 같은 측면에서 보고 있어서 일본과 같은 직업의원이라는 사람은 별로 없다. 나고야시 지역위원회의 시도는 고정화되기 쉬운 직업의원이 많은 의회를 좀 더 일반시민에게도 친근하게 해 나가자는 것이다. 이번에 처음으로 지역위원을 경험한 2명의 대학생은, 자신들을 필요로 한다고 확실히 느꼈다고 한다. 올해는 통일지방선거가 열리는 해이다. 젊은이들도 자신들의 미래를 타인에게 맡기는 일이 없이, 자신들의 손으로 새로운 시대를 열어가려는 마음이 중요하다. 그 마음을 유지하면서 활동하면,주변의 선량한 어른분들도 응원해 주실 것이다.


 

 

두 개 이상의 조국을 가지자

  • 2010/11/30 12:10
특집

 

 


이상의 조국을 가지자

 



다양하고 다채로운 메시지를 발신한 제 1회 아시아 엠파워먼트 포럼

[포럼]이라고 해도, 관제의 그것과는 조금 스타일이 다르다. 학자가 연구성과를 발표하는 장소와 같이 지적인 분위기도 아니다. 도쿄 미나토쿠의 호텔 아시아 회관에서 11월7일에 열린 [아시아 엠파워먼트 포럼]. 운영의 주체는 학생이다. 거기에는 [아시아]를 키워드로 해서, 다문화 공생사회가 있었으며 의료, 주택, 커뮤니티 예술, 기업, 자원봉사활동, 국제결혼, [사랑]과 [감동]등 다양하고 다채로운 [엠파워먼트]가 있었다. (다문화 정보지 이미그런츠 편집장, 이시하라 스스무) .

지인의 미야자키씨로부터 사전에 A4용지 2장의 포럼 프로그램을 받았다. 미야자키씨는[글로벌 커뮤니티]라고 하는 다언어 국제교류신문을 발행하고 있다. 포럼의 기획에 참가한 한 사람이다. 그런 미야자키씨로부터 2일전에, 실수가 있어서 장소가 혼고 도쿄대 공학부에서 아오야마 아시아 회관으로 급하게 변경이 되었다는 메일이 왔다. 직전이 되어서 회장변경이라니.. 약간의 불안감을 안고 회장으로 발을 옮겼다.

포럼을 주최한 것은, 국제적인 활동을 하는 단체나 유지에 의한 실행위원회. 운영은 대체로 동아시아 학생 포럼 LEAF의 여자 대학교 학생들이 담당했다. 처음하는 포럼이라 원활한 운영이라고는 말할 수 없었다. 장소에도 익숙치 않은 탓인지, 사회도 약간 더듬거렸다. 책상에 놓여진 자료 중에 정식적인 프로그램도 들어있지 않았다. 그렇지만 그런 것들을 감안하더라도 마음에 남는 메시지가 몇 가지 있다.




오프닝은 무악(악기 아님), 거문고 연주, 중국조선족 여성가수의 노래. 이 취지는 먼저 참가자의 눈과 귀를 끌어들여, 분위기를 [포럼]에 어울려지게 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이어서, 실행위원회를 대표해 LEAF의 와다토모코씨가[아시아의 미래에 대해 무언가를 하고 싶은 사람이 모여서, 제1회 포럼을 열수 있는 것을 감사하게 생각합니다.]라고 인사를 전했다. 그 뒤로 아시아 대사를 대표해 누루 무하드 쟈드마니 파키스탄 대사가 첫 포럼의 개최를 축복했다.




   
포럼의 본방은, 섹션 A의[ 다문화공생 건강, 주택으로 부터 스타트. 섹션은 [G]까지 있어, 타이트한 스케쥴 속에 분과회 같은 회의가 7개나 계속되었다. [A]에서는 인도네시아에서 일본에 와 있는 간호사, 복지사 후보생을 지원하는 [가루다 서포터즈], 외국인, 유학생 주택을 도와주는 일본임대주택관리협회, 도쿄도이다바시구 타가야마평단지에 유학생을 살게 하고, 일본인 입거자와의 교류를 깊게 하도록 노력 하고 있는 대동문화대학 각 대표가 각각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에 대한 프레젠테이션을 했다. 이 모두가 인구감소가 계속되고 있는 일본사회에 있어서, 정면으로 부터 맞서야 하는 중요한 과제이다. 


다음에 등장한 재일 외국인과 일본인 기업가들. 중국조선족 기업가(주식회사 GOG 금군연씨)는, 3개국어를 할 수 있는 특성을 살려 중국어와 한국어의 [잡지]를 발행하고 있다. [인도 커피]를 판매하는 재일 인도인 (WHCreation사 피야라오크씨)의 고생담도 흥미로웠다. 인도카레라면 누구라도 알고 있지만, 인도가 커피의 산지라고 아는 일본인은 거의 없기 때문이다. 재일 중국인(주식회사 세대계승활학사*용일 씨)가 자국 유학생을 일보에서 서포터 하는 사업도 참신했다. 입학부터 졸업, 취직까지 지원한다고 한다. 정부의 [유학생 30만인계획]응원단이기도 하다.


회장의 여자대학 학생들의 주목이 모인 것은 [다문화 커뮤니케이션]에 관한 섹션에 등장한 다문화가정지원센터 사무국장 엔즈워스 치아키씨. 다문화가정이란 국제결혼 가정을 말한다. 엔즈워스씨는 일본인이지만, 남편이 미국인. 엔즈워스씨는 신주쿠에는 10쌍중 1쌍이국제결혼이라고 지적, [국제결혼은 증가하고 있지만, 실제 생활에서는 의식소통이 어려워 이혼도 많다]라고 고생담을 이야기 하였다.



이 섹션에서 회장을 돋군 또 한명의 프레젠터는 와세다대학의 카완 스턴트 교수. 인도네시아 출신으로 공학, 의학, 약학, 교육학의 4개의 박사학위를 가진 대단한 교수이지만, 그 진수는[ 학생에게 하고자 하는 의욕을 가지도록 한다]는 것이다. 제자인 여자 대학생도 데리고 와서 구체적인 수업 실전례를 소개해, 열정적인 연설로 이벤트 회장에 [의욕]을 퍼트렸다.

     
[스탄트 효과]가 나온 덕분일까, 그 후의 의논은 열기가 높아졌다. 특히, 아시아와의 교류를 추진하고 있는 동아시아 학생포럼과 츠쿠바대학, 와세다대학 학생단체, 통역가이드, 국제의료학생단체등에서 각각의 노력이 피로되었다. 개개인이 강한 의지를 가지고 적극적으로 실천하고 있는 것 같아서  [최근의 젊은이들은 힘이 없다]라며 말하는 어른들에게 들려주고 싶은 내용이었다.



쓰라구 샤미센 연주와 싱어송라이터의 목소리로 포럼의 막을 내린 것은 예정보다 약 1시간 반 늦은 오후 8시 조금 전. 예를들어 말하자면, 다문화가 가득 채워진 따듯한 곳타탕 같은 이벤트였다. 포럼의 준비위원의 한 사람이자 일본을 건강하게  하려는 사람들이 모이는 야마모토 학원장 야마모토씨는 [이번은 제 1회였지만, 매년, 가능한 한 4개월에 1회정도 포럼을 열고 싶다]고 말했다.


「여러분, 山元(야마모토)학교로 오세요!」


Multicultural-related Magazine immigrants

http://www.imin.co.jp/immigrants/




 

日本の再生はここからはじまる

  • 2010/10/02 21:44
특집

日本の再生はここからはじまる

No.1 No.2
留学生や日本人学生が地域の人たちと協力して新しい未来を切り開く
高島平団地、日本で一番大きく、歴史のある団地で日本の大学生と留学生が地域の活性化に目覚めて大きな問題に挑戦している。 新しい地域と大学の関わり方を探るため、このプロジェクトの発起人で、ある大東文化大学の山本教授と大学職員の井上さん、活動中の大学生、留学生や地域の人たちにお話をお聞きしました。
カテゴリ名:
国際交流のイベント参加者で記念写真
1:高島平のプロジェクトを始めようと思ったきっかけは何ですか?
(山本教授)

かつては3万人以上が住んでいたといわれる高島平団地も、今では65歳以上の高齢者の割合が35%近くになり、超高齢化団地となりつつあります。また少子化が進み今後、以前にもまして大東文化大学も地域との連携が大切になって来ています。社会全てが内向きになっている状況を大学側と地域の人たちが協力して打破しようとの思いで情報交換をスタートしたことがこのプロジェクトの始まりです。最初は関係者の賛同を得るのに苦労しましたが、触れ合う間に、少しずつ雰囲気が変わり始めました。現在は大学や文部科学省からの補助も得て、高島平団地の空室を大学側が借り上げて希望学生に家賃の一部を大学が負担する形で、留学生9人を含む学生16人が入居しています。

地域通貨「サンク」の普及活動や、団地の活性化事業や広告・出版・映像事業などの展開も計画中ですし、昨年まで学生だったスタッフ(井上温子氏 後述)も大学の職員としてプロジェクトに関わり、学生と地域の人たちが以前にもまして自主的にプロジェクトの企画、運営に携わるようになってきています。



2:住民の方々と留学生や日本人の学生たちとの関わりについてお聞かせ下さい。
(井上温子大学職員)

カフェサンクという団地の店舗スペースを利用した交流スペースが5月にオープンしました。そこで学生たちや地域の方々が自主的に様々な行事や講座を企画しています。
留学生や日本人の学生が中国語、韓国語、英語などを教え、地域の人たちは子供に絵本の読み聞かせをしたり、外国人のための日本語教室などを開催しています。全ての講座は、関わる人たちのボランティアで成り立っていますが、報酬の代わりに地域通貨「サンク」が発行されます。サンクは地域の加盟店でポイントとして利用ができますから、間接的に地域の経済的な活性化にも役立つことになりますね。


3:このプロジェクトを通してどんなことを感じられましたか?

(山本)
日本の社会が内向きになっていることですかね。自分のテリトリー以外のことは関係ないという姿勢は正さないといけないと思います。パイがどんどん大きくなる成長社会が終焉を迎えているのにまだそのことに気がついていない人が多いように思います。今、一番そのことを理解しないといけないのは学生でもなく、地域住民でもなく、大学の教員だと思います。大学は少子高齢化の大きな波を受けているにもかかわらず危機感がない。このことが一番心配していることですね。教員が学生の自主性を尊重して、どうしたらやる気を起こすことが出来るかを真剣に考えなければならないと思います。ますます、大学の枠を超えて、地域や他の大学とも連携して学生の学ぶフィールドをどんどん広げていくことが重要ですね。


4:自分の将来を決めかねている学生にメッセージをお願いします。


(山本)
損得だけで物事を判断するのではなく、本当に今の自分に重要なことは何かを自分自身に問いただしてみてください。高島平には日本の社会が抱える問題が山積しています。しかし、ここに集まった学生たちはその問題に果敢に挑戦して、失敗してもまた新しいやり方を考えて仲間たちとがんばっています。周りの大人たちも経験の少ない彼らが懸命に一つのことに取り組んでいる姿をいつまでも傍観しているわけにはいきませんよね。
カフェサンクでも志のある大人たちが学生たちをサポートする体制が出来つつあります。
一度、カフェサンクに来て見てください。きっと新しい出会いが待っていますよ。

(井上)
ここにはそれぞれの個性を活かしあって助け合える仲間が大勢います。
「自分が出来ること」で周りの人たちを幸せにする、こんなにすばらしいことが実現できる舞台がここ高島平団地にはあります。私も去年まで学生でした。協力してくれるはずの学生が急にこれなくなったり、時間をかけて行事の計画してもぜんぜん前に進まないこともたくさんあります。しかし、山本先生のおっしゃる通りとにかく前向きにがんばっていると色々な人たちとの出会いの中で不思議と道が開けてくることもありました。
一度、カフェサンクに遊びに来てください。私たちと一緒に大きな夢を共有し、その夢をいっしょにかなえていきましょう!!

大東文化大学 山本教授

カテゴリ名:
山本 孝則 教授 大東文化大学 環境創造学部 環境創造学科 やまもと・たかのり 1948年東京生まれ。81年武蔵大学大学院経済学研究科博士課程修了。89年大東文化大学経済学部講師。92年同助教授。97年同教授。01年より現職。この間に94年独ハノーバー大学客員教授。主な著作に『現代信用論の基本問題』(以下いずれも日本経済評論社刊)『不良資産大国の崩壊と再生』『環境創造通貨』(共著)などがある。 山本先生が主宰する「環境創造学と環境創造通貨サンクのページ」の URLはコチラ ↓ http://members.at.infoseek.co.jp/tyamamoto/

노력과 감사의 마음으로 자기의 길을 열어 나가자!!

  • 2010/07/29 19:50
특집
간호보조생의 도전하는 마음과 그들을 진짜 가족처럼 지지해주는 사람들의 마음이 기적을 만들어냈다.
[아이우에오]부터 시작해 불과 2년도 채 안되여 일본의 간호사 국가시험에 기적적으로 합격한 인도네시아 간호사 리아 아그스티나씨와 야레드 페브리안 페르난데스씨. 많은 EPA (경제제휴협정)으로 일본에 온 간호사, 복지사 후보생뿐만 아니라 그들을 날마다 서포트 하고 있는 관계자들에게도 큰 용기를 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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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도네시아인 2명이 간호사 국가시험에 합격!!>

레이크랜드 대학 일본캠퍼스에 다니는 중국(몽골자치구) 유학생 스친토야씨가 두 사람을 인터뷰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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간호사 국가시험 합격을 정말 축하드립니다. 짧은 시간내에 합격한 것에 많은 일본인들도 놀라고 있는데 어떻게 공부를 하셨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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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1:(리아씨)일본에 와서 겨우 2개월일 때, 병원사람들이 정식 국가시험 문제를 보여 주었어요. 그 당시에는 거의 읽는 것 조차도 못했었지요. 다른 많은 후보생들은 의지를 잃었는데 저는 같은 인간이니까 못할 것은 없다고 생각하고 혼자라도 합격해 보이겠다고 다짐했습니다. 6개월의 일본어 집중 트레이닝이 끝난 후, 오전중에는 병원에서 간호 어시스턴트로서 근무하고 오후부터 병원의 선생님밑에서 공부를 했죠. 한자를 배우는 것은 시간이 걸렸지만, 보고 의미를 이해하는 것에 집중하고 쓰는 연습은 별로 안했습니다.
저희들을 서포트 해 주신 선생님들도 정말 친절하게, 정중하게 가르쳐 주셨어요. 일본어도 연습문제를 풀면서 실천적으로 공부하였기 때문에 효율도 좋게, 질리지 않게 공부를 계속 할 수 있었어요. 모르는 것은 그 자리에서 바로 묻고 외우도록 했죠.
그리고 자신없는 과목은 선생님들이 친절히 문제해설을 해주셨어요. 이것도 정말 많은 도움이 되었어요. 그렇지만 일본어도 외우면서 하는 수업이어서 선생님들은 저희들을 가르치는데 고생을 많이 하셨을거라 생각해요. 정말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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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르난데스씨)처음에는 정말 힘들었는데 리아씨의 열심히 하는 모습에 격려받았습니다. 니이가타현 산죠시의 산노쵸병원에 와서부터는 오전중에는 근무, 오후부터는 병원의 선생님부터 시작해서 많은 직원분들로부터 국가시험 공부에 대해 철저하게 배웠습니다. 어쨌든 많은 문제를 푸는 것에 신경을 썼습니다. 매일매일이 공부였지만 많은 직원분들이 저희들을 위해 바쁘신 시간을 쪼개주셨기 때문에 저희들도 공부가 일이라 생각하고 날마다 연구해가면서 합격할 수 있도록 효율이 있는 방법을 생각하면서 공부를 했습니다.
6개월 집중견습후에는 일본어 공부를 따로 하는 시간은 없었기 때문에 병원선생님과 상담해서 시험문제를 푸는 것에 집중하기로 하고, 일본어는 문제를 풀면서 필요한 것에만 응해 배우기로 했습니다. 결과적으로 이게 좋았다고 느꼈는데 5년치의 과거의 시험문제를 푸는 연습을 할 수 있었습니다. 일본어공부의 부족한 부분은 항상 사전을 들고 다니면서 모르는 것은 곧장 사전을 찾아서 외우고 , 그 표현을 가능한 한 사용하도록 노력했습니다. 일본어로 이야기하고 일본어로 생각하는 환경에 있는 그 자체가 공부였고 날마다 실력이 향상되는 것을 실감해 재미있었습니다.

Q2:서포트 해 주신 니이가타현 산죠시의 산노마치 병원은 아주 가정적인 분위기였다고 하는데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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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2:(페르난데스씨) 카마타원장선생님의 '나는 너희들의 일본에 있는 아버지니까 사양하지 말고 뭐든지 말하렴'이라는 말씀에 정말 안심하고 니이가타 생활을 시작할 수 있었습니다. 병원 직원분들도 마찬가지로 따듯하고 때로는 엄격하게 정말 가족처럼 대해 주셨습니다.
모든 분 덕분에 안심하고 생활을 할 수 있어서, 공부에 집중할 수 있었습니다. 휴일에는 저희들이 외롭지 않도록 다른 인도네시아 후보생이 사는 곳에 데리고 가 주시거나 볼링이나 바비큐에도 불러주셔서 공부 이외에도 즐거운 일이 많이 있었습니다. 검도나 배구 클럽활동도 좋은 스트레스 해소가 되었습니다. 국가시험에 합격해 저희들을 위해 열심히 서포트 해 주신 분들에게 은혜를 갚을 수 있어서 기뻤습니다.


A2:(리아씨)저희들이 티비에 소개된 적도 있어서 쇼핑을 할 때 산죠시의 분들이 가끔씩 다가와 열심히 하라고 말을 걸어 주셨습니다. 산죠시는 눈이 많아 저희들한테는 정말 추운데, 병원 분들은 물론이고 지역주민들도 정말 따듯하신 분들이 많았습니다. 마을 분들까지 저희를 응원해주시고 있는 것을 알고 많은 분들께 은혜를 갚기 위해 꼭 합격해 보여야겠다고 다짐했습니다. 추위에는 아직 익숙하진 않지만 이 곳에서 간호사로서 열심히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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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3:지금, 국가시험을 목표로 열심히 하고 있는 EPA 후보생이나 유학생 분들께 응원메시지 부탁드립니다.

A3:(리아씨) 나도 해냈으니까 여러분들도 반드시 하실 수 있을 겁니다. 일본에 왔을 때의 결심을 잊지 말고 목표를 달성할 때까지 열심히 합시다.
(페르난데스씨)저는 리아씨와 서로 격려해가면서 공부했습니다. 공부란건 고립되기 쉬운데 같이 있는 친구동료와 서로 격려하면서 열심히 합시다. 솔직히 합격할 거란 자신은 없었는데 시험 당일 예상한 문제가 나왔습니다. 신도 도와주셨다고 생각합니다. 최선을 다하면 기적은 일어납니다. 저희들도 여러분을 응원하고 있을테니 끝까지 전력으로 열심히 해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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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8년 일본에 온 제 1기생 EPA후보생에게는 내년 2월 간호사 국가시험이 마지막 챤스가 된다. 한자도 전혀 모르는 사람들에게 3년내에 합격을 요구하는 것은 너무 엄격한 일이다. 그러나 반대로 말하면 이런 상황에서도 열심히 할 수 있었던 사람들이라면 일본 병원과 사회도 그들을 무조건 따뜻하게 반겨줌에 틀림없다. 두 분의 합격 이야기는 현장에서 그들을 지지하는 병원직원, 일본어 교사들에게도 큰 용기를 주었다. 본인이 고마운 마음으로 열심히 노력하고 또 지지해주는 분들의 뜨거운 마음이 있다면 이런 상황을 타파할 수 있을 지도 모른다. 여러가지 난관에 도전하고 있는 사람들도 주변의 사람들에게 감사한 마음을 가지고 자신을 믿으면서 최선을 다해서 열심히 하길 바란다.

인터뷰 한 유학생의 감상

리아씨와 페르난데스씨 두 분에게 인터뷰를 하면서 인상적이었던 것은, 두 분다 상대(병원장 선생님과 지지해주신 주변 모든 분들)에게 감사의 마음을 강하게 가지고 있다는 점이었습니다. 그리고, 시험공부에 그냥 무조건 하는 것이 아니라, 공부의 스킬도 제대로 생각해서 해 나갔던 점이 성공의 비결이라고 생각했습니다. 리아씨의[ 다른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이라면, 자기도 할 수 있다. 다른 사람이 못 했던 것이라면, 자기가 해 보이겠다]라는 강한 마음가짐이 이번의 성공에 연결되서, 페르난데스씨의 [불가능한 것은 없다, 뭐라도 안하는 것 보다는 무언가를 해 보는 것이 낫다.]라는 생각이 기적을 일으켰다고 생각합니다. 정말 두 분으로 부터 큰 용기를 받았습니다. 다른 유학생들에게도 좋은 격려가 될 것이라 생각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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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친토야씨 레이크랜드 대학 일본캠퍼스
일본 의료의 미래를 위해 우리들은 포기하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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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장 전원참가의 대토론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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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대를 받아 시작된 EPA제도에 의한 수용이었지만..>

EPA(경제연계협정)을 통해, 인도네시아나 필리핀의 간호사, 복지사 후보 응모자, 수용기관수 모두 해마다 감소하고 있다. 수용기관에서는, 경제적, 인적부담의 크기가, 후보자에게는 일본어, 국가시험의 벽의 높이가 문제가 되고 있다. 그 현상을 누르고, 쌍방의 의견을 들으면서, 실현적인 문제와 대처하고 있는 전문가 자원봉사 집단이 가루다 서포터즈다. 가루다 서포터즈에서는 올해 1월에 이미, 후생노동성에 스킴의 제고하는 정책제안을 내 일정 평가를 받았지만, 아직 본격적인 개선은 되고 있지 않다. 그것으로 인해, 7월3일, 도쿄 히로오의 JICA지구광장에 가루다 서포터즈 주최의 [EPA수용 스킴의 방향]이란 타이틀로, 간호 관련 전문가, 대학 교수, 다문화 정책 전문가, 베테랑 일본어 교사, NPO대표등 100명 이상의 관계자가 모여, 이 큰 문제의 해결책을 찾으려 열의가 담긴 공개 토론이 열렸다.

해외의 노동문제에 자세한 안리 준교수(교토대)에 의하면, 간호 인재는 어떤 선진국이라도 외국의 직원에 기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북미는 물론, 아시아 국가에서도 다국적 스태프의 활약이 눈에 띤다. 싱가폴99%, 대만, 홍콩에서도 40%이상의 스태프가 외국 국적이다. 이미, 국제적으론 간호인재의 획득경쟁도 격해지고 있다. 지금은, EPA의 시비를 가릴 때가 아니라, 어떻게 하면, 외국인 간호사, 복지사를 안심하고 무리없이 받아들일 수 있을까를 생각해 나가자. 그래서, 관계자가 하나가 되어 전력을 다해, 행정에 계속 호소해가자는 열띤 논쟁은 종결되었다. 현재 상황의 일본인 간호사, 복지사 대우문제도 포함해서, 이런 건설적인 토론이 각각의 수준에서 이루어 진다면, 이 중요한 문제도 언젠가는 해결될 것이라 확신하고 있다.

가루다 서포터즈

일본, 인도네시아 경제연계협정(EPA)에 기초해 간호사 및 복지사 후보생의 수용시스템의 개선을 요구하며 결성된 다양한 분야에서 모인 전문가, 실무가 자원 봉사 집단. 2010년 1월에 제출된 정책 제안은 관계 소청(기관)에서도 좋은 평가를 받고, 언론에도 보도되어 큰 반향을 불러 일으켰다.

공동대표, 사무국장 미야지마 와카코씨,
〒120-0022
도쿄도 아타치구 야나기하라 1-9-13 
TEL:03-5284-3706 FAX:03-5284-3707
e-mail info@garuda-net.jp
홈페이지 http://garuda-net.jp
(* 가루다 서포터즈의 정책제안은 홈페이지에서 보실 수 있습니다.)

환경문제해결을 위한 최후의 카드!! 深井利春氏 創生水

  • 2010/05/31 12:44
특집
세제, 샴푸, 농약이 필요없이, 기름과 섞여 타게 함으로써 화석연료의 삭감, 배출가스의 저해화까지 가능하게 하는 기적의 물 [창생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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천재는 1 %의 번쩍임과 99 %의 노력 덕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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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화학물질에 의한 물의 오염이 세계적으로 큰 문제가 되어 있지만 그 근본적인 해결방법은 아직 발견되지 않았다. 그러나 그러한 문제에 20여년전부터 사명감을 가지고 모색해 온 일본인이 만든 물, [창생수]가 중국, 한국, 대만, 캐나다, 독일등의 정부 혹은 관계기관으로부터 큰 주목을 받고있다. 특히 중국, 한국에서는 각 국가적으로 하는 환경대책 프로젝트 공동사업이나 연구협력으로 요청을 하고 있다. 창생수 개발자의 후카이씨는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새겨, 물에 관한 연구를 오랜 시간 지속해온 결과 기적을 창조해내고 있다. 창생수에 관한 그 념원을 들어보았다..인터뷰는 창생수가 한국에서 주목을 받는 계기가 된, 한국 태안의 중유유출 사고현장에서 자원봉사를 했던 함동수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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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어째서 세제를 없애는 물을 고집합니까?

저는 호텔과 레스토랑 경영을 하고 있었는데 어느 날 그 주변을 흐르는 센치쿠강에서 대량의 세제 거품을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그 거품은 바로 제가 경영하고 있던 레스토랑과 호텔에서 흘러 나온 것이었습니다. 그 때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이 생각났습니다. '자연과 인간은 한 몸이다. 강을 더럽히면 인간의 혈액이 더러워져 반드시 인간은 병에 걸리게 된다. 그러니까 강을 더럽히면 안된다' 3년 가까이 고민을 했지만 아버지의 말씀이 귀에서 떠나질 않아 모든 사업을 청산하고 세제를 향한 도전이 시작되었습니다. 우선은 세제의 독성을 조사하기 시작했습니다. 수조안에 물고기를 넣고 세제를 떨어뜨리면 대단한 기세로 마구 날뛰다가 이윽고 죽어 버립니다. 물고기들이 몸부림치며 괴로워하는 것을 아무렇지도 않게 사용하고 있던 현실을 보고 반드시 세제를 없애야겠다고 결의를 굳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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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개인재산을 투자하면서 창생수의 개발로부터 성공할 때까지 약 8년간. 포기하지 않고 날마다 연구를 계속할수 있었던 이유는 무엇입니까? 그 경위와 함께 들려주세요.


아버지의 교육의 영향이 크다고 생각합니다. 지금도 잊을 수 없는 추억이 있습니다. 어느 날 아버지는 분해된 자동차의 캬브레터를 가리키면서 '이것을 원래대로 되돌려'라고 나에게 명령했습니다. 내가 '그거 할 수 있을 리가 없잖아요. 그런 일은 수리점에 부탁하면 되잖아요. '라고 반항하니 '원래 인간이 만든 거야, 인간이 고치지 못할리가 없다」면서 어떻게 해서라도 고쳐야 된다고 말씀하시는 겁니다. 나는 어떻게 고치면 좋을지 속수무책으로 어찌할 바를 몰랐지만, 불문곡직으로 명령하는 아버지의 태도에 정말 혼자서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것이라고 각오했습니다. 그리고 울면서 열심히 조립에 몰두했습니다. 그 사이 집에도 들어갈 수 없어 결국 사흘 밤낮 걸렸습니다만, 이 때 나는 '할수 없는 것은 없다 '라는 것을 배웠습니다. 그렇게 엄격한 아버지였지만 동네사람으로부터는 매우 존경받고 있었습니다. 아버지는 무엇인가 있을 때마다 '자신의 밭에 물을 끌어들이지 말아라, 다른 사람들 밭에 물을 끌여들여'라고 나에게 타일렀습니다. 창생수를 만드는 계기가 되었던 것도 그런 가르침속에 있었습니다.

그러나 현실적으로는 할 생각은 있어도 아무것도 모르는 제가 세제를 대체할 수 있는 것을 어떻게 만들면 좋을 지 도저히 알 수 없었습니다. 여러 사람들로부터 조언을 받기도 하고 책을 읽으면서 주목한 것이 물이었습니다. 조부모님 세대로부터 옛날에는 세재등을 사용하지 않고서도 강에서 세탁을 할 수 있었다는 이야기를 들었기 때문이었습니다. 그렇다면 물을 원래 있던 모습으로 되돌리면 되지 않겠냐고 생각했습니다. 돌아가신 아버지의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우리들이 더럽힌 강을 원래대로 되돌려 놓아야 한다는 생각도 들어, 묵묵히 수 만번의 실험을 계속해 나갔습니다. 우연히 일어나는 기적적인 발견도 있고, 조금씩 이상적인 형태에 가까워져 갔습니다. 그리고 우연히 신문에서 본 죠몬시대에 대량으로 사용되었던 흑요석에 관한 기사를 읽고 바로 이거것이라는 직감이 왔습니다. 결국 세제를 대신한, 몸에도 아주 좋은 원시의 물, 창생수가 탄생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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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 일본에서 노력하는 유학생이나 외국인 그리고 일본의 젊은이들에게 바라는 것은 무엇입니까?


환경을 지키는 것에는 국경이 없습니다. 2007년의 한국 태안에서의 중유유출사고에 함동수씨도 참가한 것 같습니다만, 우리도 일본으로부터 창생수의 생성기를 반입해 연안의 돌들에 붙은 중유 제거 작업을 했습니다. 창생수를 사용하면 간단하게 물과 기름이 분리하므로 작업이 빨라 매우 환영받아 한국의 KBS 방송에서도 다루어졌습니다. 그러나 바다는 연결되어 있기 때문에 이와 같은 사고는 한국만의 문제가 아닙니다. 온 세상의 사람들이 지구를 지키기 위해서는 국경을 넘는 활동을 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창생수는 여태껏 불가능이라고 생각하던 것을 가능하게 한 '본래의 물의 힘'을 이끌어 내는 것에 성공하였습니다. 미용, 클리닉, 음식, 온천, 농업, 의료, 에너지등 각 산업에 '창생수'를 사용하여 자연환경에 이로운 새로운 산업으로 이어지는 가능성도 지니고 있습니다. 원소기호 1번은 수소이지요. 환경문제는 물을 본래의 형태로 되돌리면 분명히 해결됩니다. 인간도 동물, 식물도 땅도 하늘도 전부 물의 요소로 이루어져 있습니다.

창생수는 흙도 환원해 본래 상태에 되돌려 줍니다. 그것에 의해 미생물이 소생하고 농약의 필요 없는 농업도 가능하게 됩니다. 아주 큰 중유 유출 사고가 있었던 후쿠이나 한국 태안에서 바다가 새까맣게 된 후에, 창생수을 뿌린 해안의 미생물이 활발하게 활동해 다음 해에는 해초가 가득 자라면서 물고기가 돌아왔습니다. 즉 오염된 바다도 창생수로 재생이 가능합니다. 중유 유출이라고 하면 요즘 멕시코만에서 떠들썩하고 있는데 우리도 도우러 갈 준비를 하고 있습니다.

한국에서도 일본에서도, 중유 유출 사고가 있었을 때 많은 젊은이들이 자원봉사로 활약했습니다. 세계의 젊은이들이 조금 더 지구환경을 소중히 생각하는 의식이 생겨나게 되면 이 세계는 아름다운 형태로 연결되어 인간 뿐만 아니라 동물, 식물도 살기 쉬운 지구가 되리라 생각합니다.

'잘 먹겠습니다'나 '맛있게 잘 먹었습니다'는, 음식을 만든 사람에 대해서 만이 아닌, 음식의 생명에 대해서도 하는 감사의 말입니다. 또 일본에는 옛날부터 자연에 감사를 전하는 문화가 있습니다. 한자에도 힌트가 있지만 「바다 」라고 하는 한자는 「물은 사람의 어머니」라고 가리키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 않습니까? 물을 더럽힌다는 것은 생명의 어머니를 더럽힌다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물을 더럽게 하는 것을「오」라고 씁니다. 무엇인가를 씻기 위해서 물에 유해물질을 혼합하는 것이 「오염하는」 행위입니다. 그리고 「씻는다」라는 한자에는 「물을 먼저」 써야 합니다. 「씻기」 위해 물이 제일 중요하다고 가르치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그런 기분으로 물의 중요함을 잘 이해해주시고 하루하루를 보내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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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함동수씨(한신대학교 2010년 봄 졸업)


2007년, 한국 태안에서의 중유 유출 사고현장에서의 자원봉사를 경험. 돌 하나 씻는데도 대단한 고생을 하는 상황에서 활동하였다. 그 악영향으로부터 활동 후에 중유의 영향으로 입원한 친구도 있었다고 한다.


인터뷰를 끝낸 감상 AFTER INTERVIEW

창생 월드 주식회사의 후카이 토시하루 사장과 직접 만나 여러가지 이야기를 들고 정말로 공부가 되었습니다. 결국 인간이 살아 나가기 위해서는 환경이 제일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점점 환경이 악화되어가는 지금의 상황에서 사장과 같은 분이, 한국 태안에서의 중유 유출 사고때의 자원봉사자 활동과 같이, 지구환경을 지키는 수호자로서 활약하고 있는 것을 알고 조금이나마 안심이 됩니다. 모두가 더 환경에 대해 진지하게 생각해야 하는 것이 아닐까 생각합니다. "

후카이 토시하루 대표 프로필 환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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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카이 토시하루 대표 프로필 환경

NGO「CWWI」대표. 창생월드(주)·후카이 환경연구소㈜대표. 저서「세제가 사라지는 날」이 일본어, 중국어로 출판되었다. 수질오염·토양오염의 문제가 심각한 중국이나 한국에서 정부 레벨에서도 지금 가장 주목받고 있는 인물의 한 명이다.

창생 수에 쏠리는 한국, 중국으로부터의 뜨거운 시선
(翻訳 金孝貞 早稲田大学)

저는 당신을 포기하지 않아요.

  • 2010/03/29 19:23
특집
자기자신의 가능성에 눈을 뜨게 하는 '스탄트 교수법'으로 세계의 젊은이들을 구하는 카완 스탄트 교수 (인도네시아 화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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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국인 인도네시아, 싱가폴, 말레이시아, 중국정부나 관계기관으로 부터 열렬한 러브콜을 받아, 각 국에서 강연. 스탄트 교수의 교육에 쏟는 뜨거운 마음은 각국의 고민하고 있는 젊은이들을 분발하게 했다. 그 모습은, 현지 매스미디어에서도 크게 보도되었다. 오래간만에 일본에 돌아온 스탄트 교수에게 3명의 학생이 이야기를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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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photo :nikkie BP Mr sugano )

Q:교수님의 어린 시절의 모습과 일본에 오게 된 경위를 들려주세요

A:저는 어린 시절에, 부모님을 여의고, 매우 엄격한 할머니에게서 자랐습니다. 몸이 약해서 방해꾼 취급을 당해서 집에서는 좋은 기억이 없었습니다. 집에 있는 것이 싫었기 때문에, 아침 일찍 등교해 학교 청소를 했습니다. 그 덕분에, 선생님이나 모든 사람들에게 인정을 받게 되었기 때문에 , 조금 더 인정을 받기 위해 열심히 공부하여 반 친구들이나 근처의 어린 아이들에게도 공부를 가르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막 고등학교 1학년이 되었을 때 1965년, 9.30사건 반공산당 쿠데타로 신 정부가 전국의 중국계 인도네시아인 학교를 폐쇄하여, 우리들은 교육을 받을 수 없게 되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형의 전자기계 판매사업을 도와주면서, 저도 수리사업을 차렸습니다. 그리고 그 사업이 크게 성공하여, 형이 유복한 생활을 보낼 수 있게 되었기 때문에 경제적인 이유로 고등학교와 대학에 갈 수 없었던 저는, 공부를 더 하고 싶다는 마음을 누를 수 없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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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지니어 지망이었던 저는 정밀한 전자제품을 만드는 일본에 자연스레 매료되어, 23세에 일본에 와서 26세에 일반 연령보다 8년 뒤쳐졌지만, 결국 일본 대학에 입학 할 수 있었습니다. 도쿄농공대학에서, 전자공학을 전공하고 도쿄 공업대학에서 박사과정을 수료했습니다. 그러나, 34세를 넘어있던 제가 일본에서 취직할 곳은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취직하겠다는 꿈을 접을 수 없어서, 저 자신의 조건을 조금 더 좋게 하기 위해 또 하나의 박사학위를 필사적으로 도전해 취득하였습니다. 그래서, 공학과 의학이라는 2가지 박사학위를 땄지만, 일본에서는 인정받을 수 없었습니다. 일본에서 14년간 죽을 각오로 열심히 살아왔음에도 설마 안될 줄이야... 눈 앞이 캄캄했지만 인생을 재출발하자고 결심해, 일본이 안된다면 다음은 미국 밖에 없다는 생각으로 , 3명의 어린 자녀들을 남겨두고 38세의 나이로 전혀 미지에다 최고로 레벨이 높다는 미국 과학계에 도전하기로 하였습니다. [ 일단 부딛혀 보자]는 정신으로 한번 더 자신의 인생을 걸어보기로 했습니다. 그리고, 운이 좋게도, 실력을 인정해주는 미국대학이 있어, 그토록 소원하던 교직의 일을 얻을 수 있었습니다. 5년정도 미국에서 교편을 잡았지만, 도쿄 공업대학의 은사이신 오쿠시마 교수의 권유로 또 다시 일본으로 돌아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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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어째서 미국에서 일본으로 돌아오신 겁니까? 그리고, 대학의 교육혁명에 전념하시게 된 것은 왜이시죠?

A:저는 일본에서 단련되어, 결과적으로는 4개의 박사학위를 땄습니다. 엄격한 일본사회에서 단련된 덕분에, 지금의 제가 있는 것입니다. 솔직하게 그 일본에 은혜를 갚고 싶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부임한 대학교에서 80퍼센트 이상의 학생이 수업을 이해하지 못해도 그대로 두는 것을 깨달아, 저의 수업을 듣고 있는 전원의 의욕을 불타게 해보자고 결심했습니다.
저는 모국이나 미국에서의 실제 체험담과 일본 사회에서 부정당해도 몇 번이고 도전을 계속한 제 자신의 체험을 이야기하여, 그들을 계속 격려했습니다. 반면에, 수업에는 매우 엄격한 자세로 임했습니다. 수업은 거의 영어로 진행하고, 영어를 사용한 프레젠테이션도 학생들에게 요구했습니다. 처음에는 학생들도 패닉을 일으키지만, 저의 진지한 마음이 전해지니, 학생들도 조금씩 노력하게 되었습니다. 어떠한 젊은이도 본인 조차도 믿을 수 없을 만큼 멋진 가능성(잠재능력)을 품고 있습니다. 그것을 이끌어 내주는 것은, 교육자 본연의 자세입니다. 대학에서는, 할 의지를 가진 학생만을 상대하면 된다는 생각을 가지고 있지만, 저는 어느 한 사람이라도 내버려둘 수 없습니다. 그리고, 다른 교수님에게도 학생들을 내버려두지 말았으면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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中国の大学の創立100年での記念講演



Q:어린시절, 애정이 풍부하지 않았는데도 교수님의 끝없는 제자 사랑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입니까?

A:스탄트 교수는 말한다. “저는 한 명 한 명의 학생이 각각의 이야기의 주인공이라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좋아하고, 자기다운 인생을 보내길 바랍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중간한 태도여서는 안됩니다. 많은 학생들이 눈물을 흘릴 정도로 저의 수업은 엄격한 것으로 유명하지만, 저는 한 명 한 명의 학생에게 자신의 꿈을 절대로 포기하게 하지 않습니다. 그들의 꿈은 제 자신의 꿈이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딱 보았을 때 할 의지가 별로 없는 학생이라 할지라도 미래는 멋진 가능성(=잠재능력)을 품고 있습니다. 저희 교육자에게는 그들의 숨겨진 본심과 진지하게 맞서 목숨을 걸고 수업에 임하는 자세가 필요합니다. 그렇게 하면 언젠가는 그들이 자신만의 이야기를 만들어 갈 수 있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로 부터 만들어진 것이 아닌 오리지널 인생을 살아갈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고 그것은 큰 자신감으로 이어져 자신을 점점 좋아하게 되고, 이윽고는 다른 사람에게도 친절하게 됩니다. ”

카완 스탄트씨;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술원 교수

카완 스탄트씨; 와세다대학 국제교양학술원 교수, 와세다대학 임상교육학과 연구소 소장, 1951년 인도네시아 스라바야 출생, 74년에 일본으로 건너와 전기기술을 습득. 77년에 도쿄농공대학 전자공학과에 입학. 졸업후, 도쿄공업대학, 토호쿠대학등 4개대학에서 [공학],[의학],[약학],[교육학] 박사학위 취득. 88년, 미국 듀렉셀대학 공학부 준교수, 90년, 토마스 제퍼슨 의과대학 의학부 준교수를 겸임, 93년에 다시 일본으로 건너옴. 토인요코하마대학 공학부 교수에 취임하여, [학생들의 하고자 하는 의지를 이끌어 낸다.]라는 교육법을 확립. 2003년부터 현재의 자리에. 경제산업청 산업구조의회 21세기 경제산업 정책검토 소의원회 의원을 역임, 미국 초음파 의학회, 미국 음향 학회, 일본 음향 학회, 일본 초음파 의학회등에서도 수상경력 있음. 저서 [잘 못하는 대학생]들이, 왜 취직 활동에서 인기인이 되었는가?] (미카사 서방)가 큰 화제가 됨.

바다의 재생에 인생을 건다

  • 2010/01/28 10:59
특집
바다의 파괴자에서 바다의 구세주로 된 프로다이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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Q:바다를 지키는 활동을 하게 된 경위를 가르쳐 주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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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5세부터 프로 다이버로서 일하기 시작했지만 나는 「누구보다 길고, 누구보다 깊게 잠수한다」라는 신념으로 잠수 기술과 체력에는 누구에게도 지지 않는 자신이 있었다. 그리고 32세에 회사를 설립. 그러나 최초의 큰 잠수 공사의 작업으로 잠수병을 발증. 3개월의 입원생활속에서 인간은 나약하다는 것을 처음으로 깨달았다. 하지만 그 후에도 또 인생의 시련이 기다리고 있었다. 내가 사람의 기분을 별로 생각하지 않고 사원에게 너무나 엄격한 것을 요구하고 있었기에 사원 전원이 다 함께 그만두어 버렸던 것이다.
너무 한심한 기분이 되어 그 이후 정신적인 세계의 책을 읽거나 요가등을 시작했다. 거기서 배운 배려의 기분으로 날마다 자연이나 아내를 접하는 사이에 「조용하지만 안에 있는 강한 힘」, 「여성의 힘」을 느끼게 되었다. 아무 말도 없이 지지해 주는 아내에게도 감사하게 되면서 바다에 잠수해도 잊고 있던 자연의 아름다움을 재발견하게 되었다. 「이런 아름다운 바다를 나는 수중 공사로 계속 파괴하고 있었다.」 그때까지 진행한 과거의 공사를 되돌아 보면서 날마다 후회하게 되고 일을 그만두고 싶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바다를 지키자! ! 눈을 뜨는 계기가 된 아쿠아라인의 공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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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황을 떨쳐내지 못한 상태에서 도쿄만 아쿠아라인의 일이 시작되었다. 최초의 작업으로서 「바람의 탑」이라고 불리는 환기장치를 고정시켰다. 그 구조물을 후에 조사해 보니 흑도미가 자리잡고 살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 순간에 지금까지 잠수 공사를 한 후의 바다에서 물고기가 다시 돌아와 있던 상황이 선히 눈에 떠올랐다. 그리고 깨달았다. "수중의 공사는 모든 것이 나쁜 것은 아니다. 잘 한다면 고기들이 살기 쉬운 환경을 만들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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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 때부터 「환경과 개발의 양립」이나 「잠수를 통한 마음의 교육」에 인생을 바치기로 했다. 생물에 대해서는 원래부터 전문가가 아니었기 때문에 스스로 해초나 물고기등에 대해서 처음부터 공부를 시작했다. 그리고 과거에 종사한 현장으로 되돌아가 사진이나 비디오로 공사한 뒤의 바다를 철저하게 촬영해 연구했다. 그리고 우리가 제창하는 바다의 환경에 자극없는 수중 공사의 스타일이 조금씩 주목받게 되어 최근에는 텔레비전등 매스컴에서도 다루어지고 있다. 마침내 자신이 지켜보던 수중의 세계의 현실에 광명이 찾아왔다. 오랜 세월 착실하게 활동해 와서부터 정말로 기뻤던 순간이다.
일본의 바다는 지금 위기적 상황에 있다. 물고기나 조개의 영양이 되는 해초가 급격하게 감소하고 있기 때문이다. 그 현상을 우선 가능한 한 많은 사람들이 알면 좋겠다. 제대로 치료를 하면 아직 여러가지 곳에서 바다의 재생이 충분히 가능하다.


Q:유학생이나 젊은 독자들에게 메세지를 부탁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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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바다의 테러리스트였었다. 그러나 지금은 바다를 지키는 것에 전 정력을 바치고 있다. 지금은 당신 자신도 환경을 파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금부터라도 늦지는 않다. 어떤 사람에게도 훌륭한 성스러운 마음이 있다고 생각한다. 싫은 일이 있어도 그것을 뛰여넘는 힘이라던가, 사람에게 친절하게 한다든가, 그러한 마음을 모두 가지고 있다. 지금부터 앞으로 몇번이나 실패를 한다고 생각하고 싫은 일이 있다고도 생각하지만, 가끔 자연의 아름다움에 접하다던지, 될수록 많은 사람에게 상냥한 인사를 한다던지 매일을 적극적으로 보냈으면 한다.

좋은 경험이 사람과 조직을 바꾼다

  • 2009/12/02 12:23
특집
키워드는 모성. 서로가 주고 받는 감각을 무엇보다도 소중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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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반주부에서 영화프로듀서로 변신. 처음 만든 영화가 니케이지역정보화대상[니케이MJ상 ]을 수상. 영화제작을 통해 사람의 마음을 움직여(意味が通じない) 지역을 재생시켜가는 에치고 케이코씨에게 이야기를 들어보았다..

영화 프로듀서가 되기까지의 경위를 알려주세요.

전업주부가 PTA활동의 일환으로써 친구들을 동원해 공연회, 이벤트를 주최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저를 포함하여 주변에서도 이벤트주최의 경험자는 없었습니다. 여러가지로 어려움이 있었지만 모두가 마음을 하나로 뭉쳐 지역주민들의 응원을 받으며 이벤트성공을 실현할 수 있었습니다. 그후 젊고 열정적인 영화제작스탭들과 만나게 되어 지역 활성화를 위해 시라카와시에 촬영지원을 제안했습니다. 스탭들의 열의도 전달되어 시라카와시에서는 처음으로 지역주민들과 전문영화스탭과의 영화제작이 실현되었습니다. 그것을 계기로 영화회사를 설립, 프로듀서로써 본격적으로 영화에 접하게 되었습니다.

에치고씨에 있어서 교육이란 뭐라고 생각하세요?

"영화를 통해 자연과 인간이 테마를 공유하여 영상에 담아짐으로해서
마을이 변화해가는 모습에 감명을 받았습니다. 지금까지는 어떻게 해도 바뀌지 않았던 것들이 영화촬영을 통해 바뀌어가고 있었던거죠.
중요한 사실은 기술, 방법, 금전만이 아니라 사람의 모티베이션을 얼마나 올릴 수 있는가 그것이 가장 중요한 것이라고 실감했습니다."
"제가 가장 중요시하는 원점은 모성입니다만 여성이 가진 아이를 키우는 모성감각은 영화제작과 조직의 활성화에도 큰 영향력을 가집니다.
아이를 키우는 것도 영화제작도 생각대로 되지 않은 것이 많지만
자신을 희생해서라도 가족을 위해 또는 영화를 위해 임기응변할 수 있는 유연성이 모성에는 있다고 생각합니다. 남성사회는 어떤 의미로는 서로 탈취하는 사회일지도 모릅니다. 그러나 모성이 강한 여성사회는 주고 받는 사회라고 말할 수 있죠. 일본의 여러 의사결정의 장에서는 앞으로 여성의 주고 받는 감각이 필요시 될것입니다."

앞으로 일본은 어떻게 변해갈 것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앞으로는 더욱 민족의 이동이 활발해져 아시아사람과의 관계가
중요해질 것으로 봅니다. 그 중에서도 유학생의 독자적인 역할을 만들어 가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합니다. 예를 들면 통역이라도 단순 기계적인 통역이 아니라 문화를 초월한 커뮤니케이션이 중요한 역할을 가지게 되는 것이죠. 그러한 조금 다른 시점에서의 역할을 부여하는것, 고안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만남은 인생을 가속한다

  • 2009/09/27 23:22
특집
私塾이 일본을 저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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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렇게 46 세부터 영어를 정복했다

46 세부터 일념 발기하여 영어에 다시 도전했다 야마모토 씨는 어학 능력을 갖추게함으로써 성격까지 변화하고, 밝고 긍정적인 인간이되었다. 지금부터해도 늦지 않다 어학 정복의 관건과 아이디어를 독특한語り口에서 선보인 줄 것입니다. 야마모토 씨의 사정, '적당 이니까되는 것이다. 무슨 일이든지 완벽을 추구한다 '. 먼저 삶의 방식을 바꾸기. 전기를 놓치지 않고, 21 세기 대응형 인간이되면, 영어는 자연에 관하여 온다. 인생을 즐기면서 놀면서 영어가 어느새 향상하는 야마모토있는 초간단 영어 학습 방법을 전수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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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학교가 101 회를 맞이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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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동 동영상 사이트 wajju 야마모토 학교에서 대사의 이야기도들을 수있습니다
http://www.wajju.jp/clips/list/wajju.php?search_keyword=%E5%B1%B1%E5%85%83%E5%AD%A6%E6%A0%A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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각국의 내빈을 축하 달려가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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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국인 손님도 박수를 접한 마실수 노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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EARTHST 이벤트에도 야마모토 학교가 협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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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Patience is bitter but its fruit is sweet
 (Dr. Hideo Noguchi)

노구치 히데요

사람을 위해서 흘리는 눈물은 자신에게 용기를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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야마모토 학교를 시작한 동기는 무엇입니까?

해외로부터 돌아왔을 때, 무기력, 무감동, 활기가 없는 일본인이 많아진 것을 발견하고 무엇인가 해야 한다고 생각했을 때, 세지마 류조씨(쇼와의 참모라고 불리운 전 이토츄 회장)의 「기산하」의 출판기념파티에서 「자신의 회사 뿐만이 아니라 일본인이나 일본의 나라만들기에도 배려해 주었으면 한다」라고 직접 말씀해주셨습니다.
그리고, 「사숙이 일본을 구한다」라는 책도 3번 읽고 꼭 해야겠어! 라는 마음이 굳어지고 있던 그 무렵, 학생들로부터 강연의뢰가 있었고 또 그 반향도 괜찮았으므로, 한달에 1회 강연을 들은 학생들과의 「재회의 장소」로서 야마모토 학교가 시작되었습니다. 처음은 제가 체험담을 이야기하였습니다만, 점점 찬동자들이 모여서 응원해주어 자연스럽게 많은 훌륭한 분들이 차례차례로 이야기를 하는, 현재의 형태로 되어갔습니다. 현재 저는 진행역에 일관하고 있습니다.
학생시절에는 어떤 학생이였습니까?

우수한 형들과 자신을 비교하는, 매우 열등감이 강한 자신에게 자신감을 가지지 못한 인간이였습니다. 대학 2년까지는 영어나 해외 인턴써클에서도 활동을 하였습니다만, 지금의 아내를 만나 그것도 그만두고 언제나 그녀와 함께 있었어요. 그녀 없이는 살아갈 수 없는 듯한 믿음직스럽지 못한 나 자신이여서 졸업 후 곧바로 결혼했습니다.

어떻게 자신을 바꾸어 갔습니까?

졸업 후에 아무 생각없이 일을 하고 있었는데 31세 때에 노르웨이에 부임하게 되었습니다. 영어에도 일에도 자신이 없는 내가 간 곳은 회사로서의 수주실적도 없는 나라였는데 좌천과 같은 것이였죠.
그런 제가 바뀐 것은 잡지의 기사가 계기입니다. 어느 날 아는 사람으로부터 히타치 조선의 기사가 당시의 아사히저널에 실렸다고 들어 그 기사를 읽었습니다. 조선(造船)의 일이 줄어 들어 공장사원의 가정이 하나하나 붕괴하고 있다고 하는 기사였습니다. 자신의 동료가 엄청 힘든 상황에 처한 것을 알고 울음이 나 3시간 정도 눈물이 멈추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저는 결심했습니다. 잘 되지 않는 이유를 타인의 탓으로 하고 있던 자신을 바꿔 일본에 있는 동료를 위해서도 노력하겠다고.
그러나 주위에는 실적이 있는 기업들만이였습니다. 저는 수주하기 위해 필요한 정보는 뭐든지 모으려고 돌아다녔습니다. 선주(배를 발주하는 사람)가 필요한 하주(배에 쌓는 짐을 발주하는 사람)의 정보수집이나 금융기관의 조건까지, 나에게 정보가 모이는 구조도 만들었습니다. 한때는 업계지의 정보의 출처 7할정도가 저 자신이였던 적도 있습니다. 회사에 의지할 수 없었던 나는 독자적인 정보네트워크를 만들어 마지막에는 시장의 85%까지를 독점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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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연등에서 어떤 것을 일본인 학생이나 유학생에게 전달하고 있습니까?

어떤 상황이라도 자신을 단념하지 않는 것. 특히 지금까지 좌절을 모르고 인생을 걷고 온 사람들은 역경에 약합니다. 인생승부는, 20대도 30대도 아닙니다.
40대, 50대에서도 그렇게 인생이 끝나는 것은 아닙니다. 나는 현재 65세입니다만, 아직도 새로운 것에 과감하게 도전하고 있습니다
야마모토 학교에는 눈을 빛낼 수 있고, 세상을 위해서 도움이 되는 것을 할거야!라고 호소하는 사람들이 많이 모입니다.거기서 여러가지 사람과의 만남이 있습니다.

外国人也逐渐增加,日本从此会怎样变化呢?

和持有各种各样文化的人一起生活,是非常重要。毫无疑问不远的将来日本会象美国以及法国那样变成移民大国。也许国际结婚这个概念也会消失的。相互成婚会变成奥巴马那样的脸。

외국인들도 많아졌습니다만 지금부터 일본은 어떻게 되어 간다고 생각합니까?

여러가지 문화를 가지는 사람들과 함께 살아 가는 것은 아주 중요한 일입니다. 가까운 장래, 일본도 미국이나 프랑스와 같이 이민대국이 되어가는 것은 틀림없겠죠. 국제결혼이라고 하는 개념도 없어질지도 모릅니다. 서로 서로 사귀어 모두 오바마씨와 같은 얼굴이 되어 있을지도 모르겠네요.

선생님의 제일 좋아하는 말은 무엇입니까?

「만남은 인생을 가속한다」이군요. 사람은 여러 사람과 만나 서로 배워 성장해 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나의 만남이 인생을 크게 바꾸어 가기도 합니다.
야마모토 학교에서도 지금까지 진짜 많은 사람들의 운명적인 만남에 조우해 왔습니다.

마지막으로, 지금부터 취직활동을 시작하는 학생들에게 조언을 부탁합니다.

면접관은 장래 성장하는 사람을 채용하려고 생각한다고 생각합니다.
어떤 사람이 성장해 간다고 생각합니까? 생각해 보세요.
성장하는 사람은 솔직하고, 밝고, 정직한 사람입니다. 솔직한 사람은 자주 지식이나 의견을 도입해 갑니다. 밝은 사람에게는 정보가 모입니다. 정직한 사람은 단순한 일도 계속해갑니다. 또, 시대는 IQ로부터 EQ가 되어 지금은 HP의 시대가 되었다고 생각합니다. HP와는 Horse Power 즉 마력입니다. 크게 세상이 변해가는 시대는 머리가 좋은 것보다, 사람으로부터 흡수해, 가속적으로 성장하는 힘이 필요합니다. 그것이 바로 「만남은 인생을 가속한다」라고 하는 것입니다.

山元 雅信(야마모토 마사노부)씨 프로필

日立(히타치)造船(조선)(株)시대에 주임으로 있던 북유럽 시장 점유율85%를 달성. 입사로부터18년 후, 카나즈 엑스 포지션・재팬(株)에 스타웃 되어, 아시아 최대 국제한업표본시(안경・보석・문구/사무기기・항공/우주・책・전자출판・분말가루・뷰티/에스테/코스메틱・초전도・CAI/교육)을 시작하여, 성공을 이끌었다. 그 후, 세가로 스카웃되어 서드파티 매출 10배, 북미 매출을 배로 증가시키므로써, 시장점유율 63%등 다수의 기록을 세웠다. 현재는 국제 비지니스 컨설턴트로서, 다수의 기업의 어드바이져로 근무, 각종 신규 사업에 몰두하고 있다. 한편 국내외 대학에서 년간 100회를 넘은 강연활동과 집필활동을 정력적으로 전개.
山元(야마모토)학교
여러분, 山元(야마모토)학교로 오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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