죠 브라이안토는

  • 2007/09/28 13:23
특집
일본에서의 도전과
인생이라고 하는 시합에의 교훈
죠 브라이안토는
죠 브라이안토는 동경아팟치의 주임코치로 현역시대에는 그 기술과 유연함으로 ‘젤리'라고도 불리운 원NBA선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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죠 브라이안토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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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에서의 도전과 인생이라고 하는 시합에의 교훈

죠 브라이안토는 동경아팟치의 주임코치로 현역시대에는 그 기술과 유연함으로 『젤리』라고도 불리운 원NBA선수.
현재NBA슈퍼스타인 코비 브라이안토의 부친이기도 하다.
일본요리와 서비스를 사랑해 마지않는 브라이안토는 올해로 일본생활이 3년째다.
따뜻하고 친절하게 코치는 항상 웃는 얼굴로 우리들의 질문에 대답해주셨다.
유학생독자들에게 인내성있게 참는것이 반드시 필요하지만 또 유머감각을 키워 자신의 스트레스 대처법도 알아둘 필요성이 있다고 아도바이스 해주신다.

나카노 브로드웨이

  • 2007/07/26 15:46
특집
“외국인들에게도
친절한 상점가”
나카노 브로드웨이
브로드웨이의 정면사진 YOKOSO NAKANO
중고만화나 애니메이션 등 여기에서만 컬렉터 아이템을 취급하는 가게가 모여있다 “나카노 브로드웨이”. 오래된 상점과 독특한 개성을 가진 상점이 혼재에 있는 장소로써, 지금은 전국 나아가 세계 각국으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다.
이번호는 나카노 브로드웨이의 매력을 몇몇 분들에게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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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카노 브로드웨이 진흥조합 아오키 이사장
★브로드웨이를 측면에서 지원해 주는 나카노 구약소 스즈키 참사관
★세계각국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팬들을 모집하고 있는 “만다라케” 에서 근무하고 있는 프랑스인 제루미씨
★자칭 프랑스의 “OTAKU” 에서, 지금은 나카노구 다국어 관내 가이드 제작에도 관여하고 있는 세바스찬씨
★중국 여성들에게 브로드웨이의 매력을 전하고 있는 이찌노 미유키씨
★유학생들과 일본 학생들과의 교류를 촉진하는 학생단체를 네트워크로 알리고 있는 SCN의 츠카자키씨.

그 외 브로드웨이에서 열린 국제교류 이벤트 “기즈나”(유대과계)에 참석했던 외국인 여러분들도 한 말씀 해주었습니다.
★나카노 브로드웨이 진흥조합 아오키 이사장의 말씀.

나카노 브로드웨이의 매력을 말씀해 주십시오.
브로드웨이의 매력이라고 하면 이른바 다양한 개성을 가지고 있는 상점과 옛날부터 존재하고 있는 상점들과의 관계가 의도적이 아닌 자연스럽게 조화해 나기면서 독특한 분위기를 유지하고 있는 점이다. 애니메이션이나 만화의 영향으로 세계각국에서 방문하는 장소치고는 그다지 관광지화 되어 있지 않고, 그 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저녁반찬거리를 사러 오는 극히 서민적인 점이다. 또한 다양하고 개성 있는 상점이 많이 있어 몇 번 와봐도 올 때마다 새로운 발견을 할 수 있는 곳이 아닐까 생각한다.


나카노 브로드웨이의 미래에 대해서.

앞으로는 더욱 더 새로운 것들을 많이 받아 들여, 근처의 상점가에도 좋은 영향을 미칠 수 있도록 외국인 여러분들과도 협력해, 미래의 브로드웨이를 젊은이들이 좀 더 활성화 시킬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 가고 싶다. 7월16일에는 다국어 관내 가이드를 만들어 준 센샤프에서, 외국인들을 초대해 “기즈나” 라는 명목으로 국제교류 이벤트, 핫조우지마(八丈島)의 북(太鼓)연주도 피로해 주었다. 앞으로도 외국인들의 도움을 받아, 브로드웨이를 활성화 시키고 싶다. 나카노 구약소관계자 여러분들이 공보(公報)나 경제면에서 많은 지원을 해 주셔 큰 힘이 되고 있다. 모두 힘을 합해 언제까지나 사랑 받는 브로드웨이로 남고 싶다.

★브로드웨이를 측면에서 지원해 주고 계시는 나카노 구약소 스즈키 참사관

나카노 브로드웨이가 외국인에 대한 일련의 프로모션에 대해서.
구의 행정 관련에 대해서

나카노 구내의 상점가는 나카노구의 매력을 만드는데 크나큰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특히 브로드웨이처럼 나카노의 얼굴이라고 말할 수 있는 상점가에서는 다른 곳과는 다른 오리지널의 가치를 제공해 나가는 것이 중요하다. 세계의 브로드웨이로 발돋움하고 있는 현 상황에서 이러한 다양성을 받아 들여 그것에 대응하는 환경을 만드는 것은, 단지 물건을 사고 파는 데에 그치지 않고 호스피탈리티가 넘치는(따뜻하게 환대해 주는) “커뮤니티가 있는 나카노구” 로써도 매력을 발휘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이러한 브로드웨이의 긍정적인 노력은, 행정당국으로서도 적극적으로 응원해 나갈 것이다.


★세계각국에서 만화와 애니메이션의 팬들을 모집하고 있는 “만다라케” 에서 근무하고 있는 프랑스인 제루미씨
프랑스에서는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만화가 많은 인기를 누리고 있다고 들었습니다만.


프랑스인은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만화를 어떤 의미로 예술적인 면이 있다고 평가하고 있다. 저는 “만다라케” 에서 해외통신판매를 담당하고 있다. 최근 가장 인기가 있는 것은 만화의 원화나 애니메이션의 서지화이다. 희소가치가 있는 작품은 한 점당 몇 십만 엔에 달하는 작품도 있다.
대개의 프랑스인은 그 작품을 그림과 같이 액자에 넣어 소중하게 장식해 놓는다.
그것은 어렸을 적부터 일본의 애니메이션을 보면서 자라왔기 때문인지 모른다.
실은 제팬 엑스포라고 일본의 교양문화를 중심으로 소개하는 이벤트가 매년 파리에서 열린다. 올해는 과거 최고인 8만인이 넘은 시민들이 모였다고 한다. 일본의 애니메이션과 만화 팬들은 안목이 굉장히 넓기 때문에 앞으로도 일본 그리고 브로드웨이를 방문하는 관광객이 점차 증가하지 안을까 생각한다.

국가에 대해, 문화에 대해 존경하는 마음을 가지고 상대를 보는 것을 잊지 않는 것이 중요하다.

  • 2007/06/26 16:30
특집
인재파견회사를 설립하고,
15년만에 매상 900억원의 야구장까지 가지고 있는 풀캐스트 히라노 회장의 인터뷰
【인터뷰】
중국 : 초혜민 씨
일본 :히토후지 마나미 씨
학생들의 사이에서는, 바이트 소개의 이미지가 강한 풀캐스트. 기업창립이래 불과 15년만에 매년 매상 900억의 대기업으로 성장을 이루어낸 굉장한 회사인 것이다. 이러한 급성장의 장본인인 히라노 회장의 이야기를 들어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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풀캐스트 그룹 CEO
히라노 타케히토씨
【인터뷰】
초- 인재파견회사에서는, 사람과 사람이 대하는 것을 중요하게 생각되어지고 있습니다만. 사람과의 교제를 원활하게 하는 비결이라도 있습니까?

히라노씨-
상대의 기분을 생각하는 것입니다. 무엇보다도, 배려하는 마음을 가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일에서도, 개인적인 일에서도 마찬가지 입니다. 원만하기 위해서는 상대와 마음을 터놓는 것이 중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초- 인간관계, 특히 국가가 다른 경우, 신뢰관계는 어떻게 쌓는 것이 좋다고 생각하십니까?

히라노씨-신뢰관계라고 하는 것은, 예를 들면 약속을 지키는 것은 세계공통이라고 생각합니다. 시간을 지키는 것은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문화가 다르면 다를수록 상대와 자신의 다른 점을 나쁜 쪽으로
보지 않고, 좋은 쪽으로 보고 칭찬하는 것입니다.

초- 사장님은, 인간성을 높이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구체적으로 어떻게 하면 좋습니까?

히라노씨-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많은 것을 보고, 다양한 경험을 하는 것입니다. 여러 나라에 다녀 보는 것입니다. 여러 가지를 접해 보는 것입니다. 인간이라는 것은, 자신이 살아가는 동안 접할 수 있는 경험 안에서 밖에 생각 할 수 없습니다. 저도 지금까지 만난 사람, 일들, 장소들의 축적된 경험을 통해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경험이 많으면 많을 수록, 그만큼 생각도 넓어 진다고 생각합니다.

히토후지-저는 올해부터 대학생입니다. 경험을 쌓는 것이 중요하다고 말씀하셨는데, 무엇을 하면 좋을지 잘 모르겠습니다.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히라노씨- 그렇습니다. 경험이라고 해도, 사실은 여러가지가 있습니다. 여하튼, 어떤 형태라도 인생의 수라장을 해쳐나가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수라장이라 하면 굉장한 느낌이 듭니다만, 삶이냐 죽음이냐와 같이 들릴지도 모르겠습니다. 하지만 그런것은 아니고, 점차 경험을 해나가면서, 예를 들면 친구 관계나 아르바이트나 공부를 하면서도, 자신이 사물을 생각하여 판단하고, 결단하는 상황이 많은 것도 아수라장이라고 할수 있습니다. 세미나, 서클의 간부역활을 감당해 보는것, 이러한 것도 아수라장의 하나라고 할 수 있습니다. 회비는? 장소는? 모두에게 어떻게 전하지? 여러가지 를 생각해 보게 될 것입니다. 축제의 회원장이라던가 부담이 되더라도 좋은 경험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러한 경험의 축적은 중요한 것입니다. 생각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 결단을 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 사람을 인솔하지 않으면 안되는 경우 등과 마주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히토후지-아르바이트를 올해부터 하려고 생각합니다. 친구는 체인점에서 일하는 아이가 많습니다. 하지만 아는 사람이 그런 바이트를 해서는 발전할 수 없다고 합니다만

히라노씨- 예를 들면, 맥도널드에서도 모스 버거에서도, 성장할 수 있다고 저는 생각합니다. 경험을 쌓을 수 없는 바이느틑 없습니다. 웨이트니스라도, 여러 손님들의 만족을 채우기 위해 어떻게 하면 좋을까하고 생각합니다. 그렇기 되면, 시급을 받는 것 이상의 경험을 할 수가 있습니다. 「1시간을 일한다면, 시급 1000엔을 받는다」 라고 생각한다면 성장할 수 없습니다. 시간을 떼어 판다라고 생각한다면 한가하면서 급료가 비싼 아르바이트가 좋기 때문입니다. 「한시간에 얼마」라는 생각보다 「무엇을 하면 얼마를 받을 수 있을까」라고 생각하는 것이 좋습니다. 생각하는 방법이 중요한 것입니다.

초-취업활동을 할때, 유학생이 유념해야 할 점들은 무엇입니까?
히라노씨- 우선, 저는 사람으로서 일본인과 외국인을 구별하지 않습니다. 법률이나 수속적인 부분들은 별개로, 같은 아시아인이면서, 같은 지구인이라는 생각이 밑바탕에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그것을 전제로 해서 어떤 어드바이스를 한다면, 자신의 국가에 대한 자부심을 가지고 취업활동을 하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 장점을 살리어 전하는 것입니다. 유학생만이 가능한 것들이 있습니다. 자국과 일본의 문화와 언어의 벽을 허물 수 있는 것이라던가, 자신이 유학생이라는 이점을 확실히 전달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것들을 좋으점으로 전환할 수 있는 사람을 채용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경영자라면 말입니다.

초- 일본인은 너무 일을 열심히 한다라는 이야기가 있습니다만 사장님을 채력을 키우는 것이 중요하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어떤 방식으로 발란스를 맞추는 것이 좋습니까?

히라노씨- 저같은 경우는, 스포츠는 취미입니다만(웃) 하지만, 어떤 것에도 100% 최선을 다하는 사람이 멋있지 않습니까? 예전에는 일에 100% 전념해라 라는 것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하지만 정말 일을 100% 전념하는 사람은, 노는 일에도 100% 전념합니다. 일을 요령있게 잘하는 사람은, 노는 일에도 그렇습니다. 시간의 사용방법을 보면 바로 알수 있습니다. 어떤 것은 좋고 어떤 것은 나쁘다고 할수 없습니다. 이러한 사람이 경영도 잘할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초- 귀사의 목표는 무엇입니까?
히라노씨-세계적으로 사랑을 받는 회사를 만들어 내는 것입니다. 풀캐스트에서 일하여 좋았다고 생각해 주는 회사가 되고 싶습니다. 일하고 있는 스텝들에게 친구들이 어떤 파견회사가 좋은가 라고 물어 봤을 때에 풀캐스트라고 자신을 가지고 이야기 해줄 수 있는 것 말입니다. 사람들의 기분을 소중하게 여기고, 일하는 사람들을 빛나게 해주는 회사말입니다.

초- 사장님의 좌우명은 무엇입니까?

히라노씨-
초심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초기에 갖고 있었던 기분과 마음이란, 시간이나 변화와 더불어 잊혀져 가기 마련입니다. 제일 처음에 어떠한 기분으로 기업을 일으켰는가, 일을 어떻게 시작하였는가 등을 언제나 잊지 않는 것이 소중하다고 생각 합니다.
【감상】
초- 긴장했습니다.

사토후지- 저두 그래요. 그렇지만 대학에 들어가 갑자기 이런 굉장하신 분의 이야기를 듣게 되다니, 매우 좋은 기회였다고 생각합니다. 히라노씨께서 말씀하신대로, 적극적으로 아르바이트라도 책임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도록 힘을 내겠습니다.

초- 저는, 지금 취업활동을 하고 있는데요, 매우 참고 할만한 말씀이었습니다. 커뮤니케이션의 기본은 상대를 생각하는 것 이라고 하셨는데 절대적으로 공감했습니다. 취업활동도 결국에는, 기업과의 커뮤니케이션이기 때문입니다.

사토후지- 확실히, 아직 저는 그런한 일은 전혀 알지 못하지만, 자신의 마음을 상대에게 전한다고 하는 것은, 매우 힘든 일입니다. 저두 대학을 들어가고 친구를 사귈 수 있을까 매우 불안했지만, 이제는 잘 할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초- 그렇습니다. 이 인터뷰에서 두사람 모두 친해지게 되었고, 오늘의 인터뷰는 정말 좋은 추억이 될 것 같습니다. 감사합니다.

풀캐스트 그룹 CEO 히라노 타케히토씨

【프로필】히라노 타케히토씨풀캐스트 그룹 CEO1961년 카나가와현 출생카나가와 대학 경제학부 졸업 후, 금융관계회사에 취직. 1987년에 가정교사 파견 비즈니스를 시작하였다. 그리고 1990년 경작업의 아웃소싱 사업을 시작. 2005년에는 현영 궁성 구장의 명명권을 취득하여, 풀캐스트 스타지움 궁성으로 하였다. 현재 17사를 포괄하는 대기업이 되었다.

파도사장 인터뷰

  • 2007/06/25 19:29
특집
일이란, 수단. 목적이 아니다.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어 기쁘다
쿠라하시 사장

안나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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쿠라하시 사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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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나벨:
:(바쁜 일정중에 시간을 내주셔서 감사합니다.)
우선은 쿠라하시사장님의 유년기부터 순서대로 이야기를 들어보도록 하겠습니다.
사장님은 초등학교시절의 전학 경험이 장래에 도움이 되었다고 말씀하십니다만 그 이유에 대해서 여쭈어봐도 될까요?

쿠라하시 사장
전학을 한 덕에 여러학교에서 친구와 선생님의 무리에 합류하는 테크닉을 배울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테크닉을 몸소 배웠기 때문에, 사회에 나가서도 필요성이 높은 커뮤니케이션능력을 높일 수 있었습니다.

A
(쿠라하시사장님은 학생시절, 학업에 대해서 조금 불성실했다고 들었습니다만 사실입니까?

K:
정확히 말해서 고등학교 시절에는 거의 공부를 하지 않았습니다.
당시는 학생시위가 한창이었습니다.
다니고 있던 학교에서는 진학을 위해 수험공부를 강요당했지만 그것에 대해 반항하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3학년이 되어 이대로는 의미가 없다고 느껴, 공부를 시작했던겁니다.
그렇지만 공부하는 모습을 다른 사람에게 들키고 싶지않았기에 저녁까지 농구를 하고 그 이후부터 새벽 3시까지 공부를 했습니다.

A:
(그리고 당당히 교토대학에 합격하셨는데, 대학생활은 어떠셨는지요?

K:
당시의 대학은 학생시위가 한창이었기 때문에 제대로 된 수업을 들을 수 있는 체제가 아니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동아리활동이 중심인 생활이었습니다
당시 렐리에 빠져있었기 때문에 자동차부에 들어가 자동차를 타는 것이 하루일과였습니다.
대학원에 진학은 하였지만 역시 학문이 중심이 되었던 적은 없네요

A:
(그렇군요. 그렇다면 이후에 프리페이퍼(무료잡지)사업을 시작하신 경위를 설명해 주실수 있을까요?)


K:
대학원 졸업 후 _______제작소라는 회사에 취직하여 미국에 2년정도 살았습니다만 그때의 경험이 사업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되었습니다
당시 일본에서는 70%이상의 가정이 신문을 정기구독하고 있었습니다만 미국에서는 쿠폰이 많이 붙는 수요일과 토요일에만 신문을 산다는 발상이 강하여 정기구독이란 의식이 없었습니다
당시에는 미국에서 무언가가 유행하면 5년,10년뒤에 일본에서 똑같이 유행을 불러 일으키는 일이 많았기 때문에 반드시 가까운 미래에 일본에서도 유행할 것이라고 생각했던겁니다
이 이야기는 2005년으로 거슬러 올라갑니다만 광고비 시장의 전체가 5조9000억엔, 그 중 신문이 1조엔, 잡지가 3900억엔,그리고 전단지가 4700억엔이었습니다
신문이 잡지시장보다도 크고 디자인료를 합하면 1조엔이상의 시장이었던겁니다
만약 신문이 없어진다면 이 1조엔은 어떻게 될까?
당시 전단지는 신문에서만 발행되었는데 만약 신문보다도 싼 가격에 더욱 더 지역에 한정화하여 광고를 찍어내는 인프라를 만들어낸다면 신문의 대체역이 되지 않을까라고 생각했던겁니다
그리고 그것이 바로 프리페이퍼였던 것입니다.
당시 IT가 앞으로 진화할 것이라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수작업이 아닌 컴퓨터를 사용하여 편집작업이 가능해지리라는 전망도 있었습니다
즉 프리페이퍼등의 제작도 간단해 질 것이라는 흐름이 있었다는 것입니다

A:
(그런 경위로 1987년에 프리페이퍼『PADO』를 창간하셨던 거군요.
당시 고생하셨던점은 어떤것들일까요?)

K:
발행하는 지역을 세분화하여 좋은 매체를 만들고 있음에 틀림이 없는데 좀처럼 광고위탁이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당시 프리페이퍼는 대단히 드문 존재로 좀처럼 신뢰를 얻을수 없었던겁니다.
그것이 힘들었던 점입니다.

A:
(일본기업의 해외전개가 근년 눈에 띄고 있습니다.
귀사도 해외전개에 대한 계획을 가지고 계신지요?

K:
현재『PADO』의 발행부수는 전국에서 약 1260만부로 기네스에 인정되어있습니다.
하지만 현상태에 만족하지 않고 앞으로 발행지역을 확대하여 부수를 늘릴계획임으로 그 과정에서 당연히 해외진출도 검토하고 있습니다

A:
(『PADO』에는 어떤 종류에 정보가 게재되어 있는지요?)

K:
발행지역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평소의 생활에 도움이 되는 정보가 많습니다.
그 지역의 음식점이나 미용실의 정보, 구인정보 등등 샐활권의 다양한 정보가 게재되어 있습니다
가정에 배부를 하고 있기 때문에 타겟으로는 주부가 메인입니다

HIS 澤田(사와다)회장 인터뷰

  • 2007/02/26 02:22
특집
2000명의 사원을 통괄하고 있는 리더는 외국인입니다.
외국인에 대한 채용에 적극적인 H.I.S그룹의 회장 澤田秀雄(사와다 히데오)씨와의 인터뷰많은 젊은이들에게 해외여행의 길을 열어 준 원조 벤쳐기업, 그러나 현재는 여행, 금융, 항공, 호텔 분야에 달하는 그룹 기업체로 성장한 H.I.S의 창업자 澤田秀雄(아사다 히데오)씨에게 중국인 유학생 kyou(쿄우)씨가 만나 보았습니다.
제8회
방문지  澤田秀雄(사와다 히데오)씨
방문자 MISS KYOU
많은 젊은이들에게 해외여행의 길을 열어 준 원조 벤쳐기업, 그러나 현재는 여행, 금융, 항공, 호텔 분야에 달하는 그룹 기업체로 성장한 H.I.S의 창업자 澤田秀雄(아사다 히데오)씨에게 중국인 유학생 kyou(쿄우)씨가 만나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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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연의 섭리를 소중히 해야한다는 것입니다. 인간은 우주에서 태어났기 때문에 자연과의 밸런스를 중요하게 생각해 가는 것이 우리의 정책입니다.
Q 1 : H.I.S는 해외 여행 회사로써 일본에서는 가장 잘 알려진 회사인데 다른 여행 회사와 비교 해 볼 때 H.I.S의 우수한 점과 매력은 무엇입니까?

A 1 : 다른 여행 회사와 비교 해 개인 여행에 자신있다고 할 수 있죠. 개인 여행은 통상 값이 비싸지만, H.I.S의 개인 여행은 요금이 싸고 인기가 있습니다. 또 회사의 경영도 20대, 30대가 중심이기 때문에 앞으로도 더둑 성장이 기대되는 회사라고 생각합니다.

Q 2 : 홈페이지에서 보았는데 30년 전에는 동경~런던 사이가 70만엔 정도 했다고 생각합니다만, 지금은 시즌에 따라 8만엔 정도에 갈 수 있습니다. 값이 싼 티켓 판매의 선두자로서 여러가지 고생이 있었을거라도 생각되는데 그 부분에 대해 들려주세요.

A 2 : 20수년 전까지 비용이 비싸서 젊은 사람은 좀처럼 해외에 갈 수 없었지만 H.I.S에서는 젊은이들도 힘이 미칠 수 있는 범위의 금액으로 판매를 개시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일에 대해 큰 여행회사나 항공회사로부터 압력을 받은 일도 있었고, 여러가지 노고가 있었습니다. 그러나 당시 가장 힘들었던 일은 무명의 여행회사였던 점도 있었겠지만 아무리 반값의 가격이라고 해도 고객에게 좀처럼 신용을 받지 못 했던 일입니다. 작은 사무실에서 몇 명의 스텝으로 영업하고 있었고, 티켓도 공항에서 건네주고 있었습니다. 몇 달은 고객이 와도 쉽사리 티켓을 구입하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러나 여행을 좋아하는 사람들 사이에서 우리의 값 싼 티켓의 소문이 넓게 퍼져 서서히 젊은이들로부터 침투 해 졌습니다.

로필 澤田秀雄씨

프로필 澤田秀雄(아사다 히데오)씨1951년 2월 大阪府(오사카부) 출생. 大阪市立(오사카 시립) 生野(이쿠노)공업고등학교를 졸업 후, 1973~76년 구서독・마인츠 대학에 유학. 아르바이트로 비용을 모아 유학 중 방학을 이용하여 유럽, 중동, 아프리카, 남미, 아시아 등 50개국 이상을 여행함. 일본에 돌아와서 여행을 하려고 할 때 어떤 회사든지 일률적으로 같은 해외로부터 보면 이상하게 여길 정도의 높은 요금을 받는 내외격차에 의문을 느낌. 1980년 여행회사 「인터네셔널 투어즈」를 설립, 「인도 자유여행」등 값이 싼 항공권을 중심으로 하여 개인을 대상으로한 패키치 여행 등 다양한 상품을 준비함. 1990년에 회사명을「에이치・아이・에스」로 변경. 1995년 3월에는 주식 점두 공개를 달성. 1996년 11월 호주 골드 코스트에 호텔을 오픈. 1998년 9월에는 국내 제 4번째 항공회사「스카이 마크 에어라인즈」를 타사의 반가격 운임으로 취항시켜 사회적인 화제가 됨. 1999년 1월에는 協立(쿄우리츠)증권의 주식을 취득하여「에이치・아이・에스 協立(쿄우리츠)증권(주)」의 대표임원 사장으로 취임하여 금융업게로의 본격적인 침입도 겨낭.

아사노교수의 인터뷰 요약

  • 2006/12/20 16:58
특집
「만남을 소중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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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생시절은 크게 고민하는일도 필요.청춘시기란 그렇게 근사한건 아닙니다
(본문)
수많은 개혁을 진행했던 대단한 전 지사라고는 여겨지지않는 매우 온화한 미소의 아사노교수, 게이오대학의 세상두려울것없는 학생들을 상냥하게 이끌어가십니다.
「정치가가 된것도 제가 강렬하게 원해서 된건 아닙니다.미야기겐에서 큰 사건이있어、
우연히 저한테 말이 들어왔기에 그걸 받아들여 지사로 입후보한겁니다.
그러니까、지금 꿈이 없다고해서 자신을 비하할 필요는 없다고 봅니다. 40년전의 저도

마찬가지였습니다.인생에서 중요한것은 만남입니다.그 만남에 대해서 어떤 반응을 취하는가에 달렸습니다.」라고 교수는 말씀하셨다.
교수에게있어서 매일 자신의 딸과 같은 년대의 사람들과접한는것은 모종의도전이다
그러나,무엇을 가르친다고하기보다 오히려,무엇인가를 생각하는 계기를 만들어주고
싶다고 생각하고 계신다. 교수의 리상적인 자치는 북유럽의 장애자복지등,매개인을 소중하게 여기는 그런 스타일의 자치다.
교수는 말씀하신다.「학생시기는 리상도 높고 현실과의 차이로 고민하는 일도 많겠지만
청춘시대라는건 그토록 근사한것은 아니다. 상처입는게 두려워서 사람과 깊게 교류하지
않는 삶보다, 싸움도 하고, 실연도하는 경험도 소중한것이다. 학생시기는,이해관계없이
교제할수있는 귀중한 시간이니까 사람과의 만남을 특히 소중히 여겼으면 한다. 」
교수는「발밑에 샘있어」라는 말을 좋아한다. 앞을 염려하는것도 중요하지만, 지금을 즐기는 기분을 더 소중히했으면 하는것이다.

Long Interview

  • 2006/12/08 09:25
특집
LongInterview vol.6
「인간관계의 중요성」 많은 사람들과 만나는 것이 무엇보다 즐겁움 이라고 말하는 NHK 伊藤敏恵(이토우 토시에)캐스터와의 인터뷰부드러운 말투와 미소가 너무나 멋진NHK 伊藤敏恵(이토우 토시에)캐스터를 말레이시아의 유학생 陳(친)씨가 인터뷰하였습니다. 伊藤(이토우)씨와 현재 NHK 「뉴스워치9」의 캐스터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제6회
방문지  NHK 伊藤(이토우)氏
방문자 陳(친)
부드러운 말투와 미소가 너무나 멋진NHK 伊藤敏恵(이토우 토시에)캐스터를 말레이시아의 유학생 陳(친)씨가 인터뷰하였습니다. 伊藤(이토우)씨와 현재 NHK 「뉴스워치9」의 캐스터로 근무하고 있습니다.
feature_06
좌우명가시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당신은 장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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陳(친):왜 아나운서가 되려고 생각했습니까?

伊藤(이토우)氏:

대학시절 사람과 사람사이의 연관성에 대해 무척 흥미가 있어서, 심리학 카운셀러의 길을 지향하고 있었습니다. 대학원으로의 진학도 생각했었지만, 빨리 취직하는 것이 좋겠다는 부모님의 권유도 있고하여 취업을 결정하게 되었습니다. 언어에 대한 관심도 높았을 뿐만 아니라 사람들과 이야기를 하면서 방송을 만들어 가는 일에도 흥미가 있었기 때문에 메세지를 전할 수 있는 아나운서라는 직업을 선택하였습니다.

陳(친):아나운서라는 직업에 있어서 즐거운 점은 무엇이며 반대로 힘든 부분은 무엇입니까?

伊藤(이토우)氏

즐거운 점은 무엇보다도 많은 사람과 만날 수 있는 일입니다. 이 점에 매력을 느낀거죠. 그러나 현실은 힘든 일도 많죠. 지금 담당하고 있는 뉴스 방송은 생방송이기 때문에 제가 하는 말들이 그대로 방송으로 흘러나갑니다. 보이지 않는 사람들에게 메세지를 전한다는 긴장감과의 싸움은 몇 년이 지나도 변하지 않습니다. 텔레비젼의 건너 편에 있는 시청자들에게 어떻게하면 바란스 좋게 메세지를 전달할 수 있을까를 매일매일 생각하고 있습니다. 책임이 큰 직업이지만 무척 보람이 있는 일이죠.
陳(친):지금까지 가장 인상에 남았던 일은 무엇입니까?

伊藤氏(이토우):

岡山(오까야마)의 신입시절에 만든 방송 중 시인 永瀬清子(나가세 키요코)님에 대해 만든 방송이 있었습니다. 이전부터 永瀬清子(나가세 키요코)님의 시를 무척 좋아했었기 때문에 永瀬清子(나가세 키요코)님과 만날 수 있다는 사실만으로도 설레이고 있었지만, 그녀는 그 취재3달전에 돌아가셨다고 합니다. 그런 일도 있고 해서인지 그 방송에 대한 애착이 한층 더 깊게 되었습니다. 30분정도의 방송에 불과하지만, 저에게는 추억이 깊은 보물과도 같은 방송입니다.
그리고 3년전에 ‘히끼코모리(정신적인 문제나, 사회 생황에 대한 스트레스등을 이유로 외출하지 않고 집안에만 있는 상태)’ 의 사람들을 응원해보자고 제작한 방송 「한번의 만남 ~ヤイコ(야이코)와 88인의 젊은이들 ~」의 캐스터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 방송 중, 그렇게까지 집안에만 틀어박혀서 밖을 나간적이 없는 젊은이들에게『스튜디오에 와서 지금 느끼고 있는 것을 전해주기 바란다』라고 호소하던 중、88명의 ‘히끼코모리(정신적인 문제나, 사회 생황에 대한 스트레스등은 이유로 외출하지 않고 집안에만 있는 상태)’ 젊은이들이 스튜디오에 와 주었습니다. 그들은 이런저런 의견을 내 주었었고, 모두의 마음의 외침을 직접적으로 들을 수 있는 기회가 되었었기 때문에 무척 인상에 남아있습니다.

陳(친):좋아하는 명언 또는 좌우명을 들려주세요.)

伊藤(이토우)氏:

『가시가 있기 때문에 비로소 당신은 장미』라는 말입니다.
앞에서 얘기한 시인 永瀬清子(나가세 키요코)님의 말씀으로, 여성의 아름다움도 고상함도 인간으로서 심지의 강함이 있어야 비로소 한 층 더 돋보인다는 의미입니다.

陳(친):마지막으로 유학생을 위한 메세지 부탁드립니다.

伊藤(이토우)氏:일본에 있는 동안 될 수 있는 한, 많은 사람들과 만나주세요. 학교 공부도 중요하지만, 많은 사람과 만나 여러가지 많은 의견을 듣는 일이 무척 중요합니다.

陳(친):귀중한 말씀 정말 감사드립다.

모든 일은 밸런스가 불가결하다

  • 2006/09/20 14:27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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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초 터키인 우주비행사후보인 아니릴 셀칸씨를 동경대학교에서 인터뷰했다. 그는 현재 동경대학교 대학원연구소의 조수연구원이다.전문분야는 공학과 건축이지만 그는 11개국 언어를 자유롭게 구사하고 일본역사를 아주 좋아한다고 한다. 넓은 분야에 걸쳐 풍부한 지식이 있다. 실제로 그는 셀칸씨를 동경해 우주에 가고싶다는 터키의 어린이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그렇게 말한다는 것은 아주 기쁘지만 어린이들은 여러가지 학문을 공부해서 시야를 넓혔으면 한다.”
일본에 있는 유학생들에게도 이런 격려의 말을 했다.
“힘들더라도 자기자신이 정한 길이고 꼭 좋은 경험이 될 것이니까 포기하면 않된다. 또 공부만 하지 말고 밸런스가 중요하다. 사람들도 만나고 독서도 하고 자신의 시간과 사람들과의 만남도 소중히 했으면 한다.”
그가 터키인인가 아니면 국제인인가 라는 질문에는 단언하였다.
“국적은 터키이지만 저는 인종이나 종교로 사람을 판단하기는 싫습니다. 그런 점에서는 국제인 이죠.”
마지막으로 그의 좌우명을 소개한다. “無(무)”는 옛 중국의 말로, 행복도 없고 슬픔도 없는 세계에서는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는다. 자신의 마음을 “無(무)” 로 할 수 있다면 성공할 수 있다고 그는 말했다.

「와타미」

  • 2006/07/20 14:01
특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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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의 인터뷰는 「와타미」 사장님인 와타나베씨께 말씀을 받았습니다. 와타나베씨는 현재 와타미 경영 뿐만 아니라 농업이나 NPO활동, 병구완 그리고 환경문제 등 분야에 대해서도 주력을 하시고 계십니다. 세계에서 가장 「고맙다」는 말을 모으는 기업이 되겠다는 목표를 내세우시면서 활동을 하시고 계십니다. 그 활동을 통해서 더 많은 「고맙다」는 말을 모으고 싶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또 농업이나 환경 문제에 직면하여 그 문제에 씨름함을 통해서 세계적인 환경 문제나 기아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세계 각 나라가 하나로 활동하는 게 중요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렇기 위해서는 각 나라가 서로 도와주며 때로는 참으면서 더 좋은 내일이 되기를 목표로 해서 노력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그런 문제들도 자연히 해결할 수 있을 거라고 하십니다. 또 유학생들에게 일본에 오신 목적을 꼭 실행하시고 그걸 달성하실 수 있도록 노랙을 해주셨으면 싶다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걸 응원하기 위해서 일터를 제공해 드리고 싶다고 생각하고 일을 많이 하셔서 그 목적이나 꿈을 실현하시기 위해 버신 돈이 쓰이여 많이 공부하셨으면 싶다고 생각을 합니다.

마이노우미제키씨의

  • 2006/06/23 14:28
특집
일본대학교 경제학부를 졸업한 후, 야마가타현에 있는 고등학교 교사로 내정되어 있었으나 스모우의 꿈을 이루기 위해, 주변의 반대를 무릅쓰고 프로 입단을 결심. 키가 신입단원 검사기준(당시)에도 미치지 못해, 머리 속에 실리콘을 넣어 간신이 검사기준에 합격. 1990년5월 오즈모우 데와노우미 스모우 도장 (出羽海部屋)에 입문하여,같은 달 첫 등판. (대전표에 이름이 오름) 1991년3월, 주우료 (十両)[시코나:마이노우미(四股名:舞の海)]로 승진, 같은 해 9월 대전표의 최상단에 이름이 실려 막구우찌 진영에 진입하게 되었다. 스모 계에서 가장 작은 신체조건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네코다마시”(스모우 기술), “핫소우 도비”(스모우 기술) 등 다양한 기술로 스모우 팬들을 놀라게 만들어, “기술 백화점”이라는 별명까지 붙게 되었다. 은퇴 한 1999년 11월까지, 기술상을 5번이나 수상하는 활약을 보임. 현재, 호빵맨 숍의 CM 캐릭터, NHK오즈모우(大相撲) 해설자로 활약하고 있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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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이노우미씨에게 스모우와 일본의 문화에 대해 브루네이의 유학생인 세크스피아씨가 인터뷰 했습니다.

Q1:처음에 교사가 되시려고 하셨다고 들었습니다만, 스모우 선수가 된 이유는 무엇입니까?
A1:실은 대학 시절, 스모우를 함께 했던 친구의 죽음으로 상당한 쇼크를 받았습니다. 죽은 친구는 평소에 건강한 체질로, 그 친구도 스모우 선수가 되는 것이 꿈이었습니다. 친구의 죽음을 계기로 저도 제가 하고 싶었던 일을 해야겠다는 마음이 점점 강해졌습니다. 학교 교사가 되어 안정된 생활도 생각해 보았습니다만, 사람은 언제 죽을지 모른다는 생각이 머리 속에서 떠나지 안았습니다. 그래서 저는 친구를 위해서라도 스모우 선수가 되어야겠다는 결심을 했습니다. 중요한 것은, 자신의 일은 자신이 결단을 내려야 하는 것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Q2:스모우 선수로써는 신체적으로 여러 가지 불리한 점이 많이 있었으리라 생각 합니다만, 어떻게 극복 하셨는지요?
A2:신체적으로 불리하다고 해서 방법이 없다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많은 사람들로부터 그런 말씀을 들었습니다만, 저는 단지 본인이 생각하기 나름이 아닌가 생각합니다. 신체적으로 완벽한 선수들도 두려운 것이 있듯이, 누구나 약점은 가지고 있는 법이기 때문에 이길 수 있는 방법이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저는 상대에 대한 두려움 보다는 상대를 이길 수 있다는 마음이 강했던 것 같습니다.

Q3:스모우 선수들은 왜 존마게(일본 스모우 선수들의 상투)나 마와시(일본식 샅바)를 합니까?

A3:스모우는 일본에서 가장 오래된 무도의 하나입니다. 1400년 전부터 전해져 내려와, 당초에는 규칙도 없었습니다만, 세월이 흐르면서 도효우(일본식 씨름판)가 생기고 지금에 이르렀습니다. 지금은 스모우를 스포츠라고 생각해 버리는 사람들이 많습니다만, 스모우는 일본의 전통문화의 하나 입니다. 지금은 스모우의 관습 또한 변해, 승리한 사람이라 해도 기쁨을 겉으로 표현하지 않습니다. 패배한 사람에 대한 배려와 감사의 마음을 전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에, 승부가 결정되면 조용히 서로 예의를 갖춥니다. 시합에 임할 때에는 생사를 건 혈전이라고 할 정도로 격렬하지만, 승부가 가려진 후에는 승부에 관계없이 서로를 존중합니다. 이것이 아름다운 스모우의 전통입니다.

Q4:연예활동을 하시면서 기억에 남아있는 것이 있습니까?

A4:부탄이라는 나라의 고도 2000M나 되는 곳에서 아이들에게 스모우를 가르쳐 준 적이 있습니다만, 그 때 고산병(高山病)에 걸려 고생한 것이 생각 납니다. 그곳 사람들은 전기도 라디오도 없는 곳에서 쌀과 채소를 기르며 생활하고 있습니다만, 사람들의 마음은 순수하고 여유롭습니다. 그 곳 사람들과 있으면 마음이 깨끗해지고 행복해지는 것을 느낄 수 있습니다.

Q5:
일본에 거주하는 유학생 들에게 조언 한 말씀 부탁 드립니다.

A5:강한 의지를 가지고, 처음에 세우신 목표를 달성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또한 많은 사람들과의 교류를 통해 일본의 문화를 배우시길 바랍니다. 그렇게 함으로 해서 자국의 문화에 대해서도 보다 깊은 관심과 이해를 가질 수 있게 될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Q6:끝으로 좌우명을 알려주십시오.

A6:“받은 것은 잊지 말고, 베푼 것은 말하지 마라” 타인에게 받은 것은 잊지 말아야 하고, 타인에게 도움을 준 것은 자랑하지 말라는 의미입니다.
꿈을 향해 전진하십시오.


대단히 감사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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